왕의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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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윈저」공 미망인이 오늘(24일) 상오10시 파리 근교의 자택에서 별세했음을 깊은 충도 속에 발표한다-. 버킹검 궁의 이 짤막한 성명 한 토막으로 「세기의 러브스토리」는 드디어 대미를 거두었다.
호리호리한 키에 약간 선병질의 인상을 주는 여인, 두 번의 이혼 경력이 있으며, 특출한 미모나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닌 여인….그런데도 한 남자의 왕관을 버리게 한 이 여인의 매력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윈저」공의 부기를 쓴 대부분의 작가들은 「심프슨」부인의 용모보다 그녀의 성격과 취미를 들고 있다.
평소의 개방적이고 활달한 언동, 전원을 좋아하고, 경마를 즐기며, 우아하게 춤추는 매혹적인 모습이 황태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그녀의 매력은 또 있었다. 상대방의 말귀를 갈 캐치하고, 마음속으로 동정하며, 아낌없이 칭찬할 줄 아는 상냥한 마음씨, 그러면서도 항상 발랄한 재치가 번뜩이는 말솜씨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대영 제국의 왕관과 맞바꾼 「세기의 수수께끼」를 풀기에는 어딘가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랠프·마틴」이 쓴 『왕이 사랑했던 여인』을 보면 이런 수수께끼가 어느 정도 풀릴 것도 같다. 「심프슨」부인과의 면담, 「윈저」공의 급우와 측근들의 증언을 광범위하게 모아 엮은 「마틴」의 이 부기는 무엇보다 「윈저」공의 정신적, 육체적 열등감을 들고 있다.
내성적이고 소극적인「윈저」공은 총각시절 「델머·파네스」라는 연인이 있었다. 그러나 이 여인은 황태자에게「부만」을 품고 그의 곁을 떠났다.
「심프슨」부인은 「윈저」공의 이런 열등감을 따뜻한 모성애로 감싸주었을 뿐 아니라, 그가 「훌륭한 남성」이라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기도 했다.
「심프슨」부인은 한때 중국에 머무른 일이 있었다. 그때 그녀가 터득한 중국인의 인생관과 「부부애」도 「윈저」공을 사로잡은 하나의 매력이었다고 「마틴」은 적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역사적 러브스토리도 72년 「윈저」공의 별세 이후엔 많이 퇴색해버렸다.
84년 영국 BBC가 방영한 다큐멘터리 『망명객의 사랑』은 이들의 로맨스를 『비참히 끝난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평했다. 그리고 그들의 결혼이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콧대가 센 「심프슨」부인이 잔소리를 하거나 구박을 하여 마음 여린 「윈저」 공을 가끔 울리기도 했다고 소개한 것은 인상적이다
이제 반세기에 걸친 동화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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