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급등은 당연한 실세화"|미국은「엔고」를 즐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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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워싱턴=장두성 특파원】일본 엔화가 연일 전후 최고기록을 깨며 강세로 치닫고 있지만 미국 측의 반응은 지극히 담담하다. 오히려 그 이상 올라가기를 기대하는 눈치까지 보인다. 미 행정부 관리들은 물론이고 신문·방송도 짤막한 사실 보도만 할 뿐 일본에서 들어오는 아우성은 적어도 현재로서는 소개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반응은 지난 4년 동안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가 매년 배가해 왔고, 지난해에는 적자폭이 무려 4백97억 달러(미국 측 집계)에 달하게 된 주요 원인이 달러화의 대 엔화 강세현상에 있었다는 전제아래 이제 엔화가「실세화」되고 있다는 미국 측 시각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엔화의 상승세가『적절하다』고 논평해서 22일에 엔화 시세를 더욱 자극했던「레이건」미대통령은 같은 자리에서『각국 통화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데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 고 말했고 23일 상공회의소 연설에서는『달러 시세가 이제 조정 과정에 있다』고 논평했다.
이와 같은 발언은 4월초「나까소네」일본 수상이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1달러에 1백80엔대로 안정시키자고 한 요청에 대해「레이건」대통령이『유의하겠다』고 응수했다는 보도와 함께 미국이 생각하는 엔화 가치의 적정 선이 1백80엔보다 높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아이아코카」크라이슬러 자동차 회장은 환율조정의 주역인「베이커」미 재무장관의 말을 인용, 엔화는 달러 당 1백50엔까지 올라가야 될 것이라는 소문을 터뜨렸다. 이것이 미국행정부가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엔화 시세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미국 내 경제전문가들 중에는 이보다 훨씬 높은 선을 주장하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카터」행정부에서 재무 차관보를 지낸「프레드·버그스」은 10년의 기간을 두고 엔화가 1백20엔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주장했고 브루킹즈 연구소의 경제전문가「로렌스·크라우스」는 환율이 결국 달러 당 1백 엔으로 올라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베이커」재무장관은 현재 73년이래 실시되어 온 서방 화폐의 유동환율제를 보다 안정된 체제로 개편하려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엔화의 급상승도 그 작업의 한 가닥으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은「베이커」장관의 야심에 찬 계획은 지금까지「레이건」행정부가 주창해 온 자유방임주의와는 정반대 되는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 지난 9월22일 뉴욕에서 있었던 서방 5개국 재무장관회의(G5)의 외환시장 개입 결정으로 시작된「베이커」의 주도는 군사 면에서 「레이건」행정부가 보이고 있는 적극성과 궤를 같이하는 경제면에서의 주도권 장악 시도라고 뉴리퍼블릭 지는 평하고 있다.
이 잡지는 만약 이 시도가 성공할 경우 미국의 경제적 지도력은 월남전과 석유수출국기구 (OPEC)의 득세이래 쇠잔했던 시기를 탈피하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비즈니스 위크지에 따르면「베이커」장관의 계획은 서방 5개국이 각각 자기나라 화폐의 적정 환율 대를 비밀리에 정해 놓고 환율이 그 대를 벗어나면 공동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1단계로 삼고 있다.
이 환율 대를『목표환율 권』(Target zone)이라고 칭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개입만으로는 국제자본 투기 가들의 환율 조작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제2단계로서 각국은 세율감축·금리조정·시장개방 등 경제정책을 공동으로 조정하도록 한다.
이와 같은 미국 측 청사진은 일본과 서독의 경우에서 보듯 미국이 적정 선이라고 보는 해당 국 화폐의 환율을 당사국이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각국이 국제적 효과를 감안해서 자국 경제정책을 펴 나가는데 외부간섭 요소를 안고 있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 측은 서방 5개국이 외환시장 개입 결정과 지난 2월에 있은 금리인하 결정에 합의한 것은 그와 같은 결정이 모든 참여 국들의 이익에 부합되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앞으로도 그런 이해관계의 합의가 가능할 것으로 낙관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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