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60엔 대의 엔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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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계속 치솟고 있는 일본 엔화가 드디어 달러 당 1백70엔 대를 깨고 사상 최고의 시세를 기록했다. 그리고 이 기록경신은 앞으로도 몇 달간은 더 지속 될 것이다.
비록 일본의 통화당국이 시장안정을 위해 적극적인 개입을 시도한다 해도 이 기록경신을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관측자들의 전망이다.
무엇보다도 미-영을 비롯한 선진공업국들이 더 이상의 엔 상승을 바라고 있는 한 협조개입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시장관계자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특히 시장 거래자들이 언제나 주목하고 있는 미국 측에서 엔화의 현재 추세가 당연하며 「바람직하다」(「레이건」대통령)고 보고 있는 한 일본 중앙은행만의 개입으로는 시세를 반전시킬 수 없을 것은 자명하다.
현재의 엔 강세와 관련된 세 가지 관심사는 우선 어느 선까지 진전될 것인가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진전되는가, 그리고 그 같은 시장변화의 결과가 국제통화의 안정으로 귀결될 것인가 하는 문제들이다.
첫 번째 관심사는 명쾌한 예측을 뒷받침 할 자료들이 많지 않으나 이 문제는 거의 전적으로 미일간의 이해 절충결과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지난 주 워싱턴의 G10회담에서 드러났듯이 미국은 물론 영국과 프랑스조차도 더 이상의 엔 상승을 기대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달러 하락의 기대효과가 아직도 미진하고 최대변수의 하나인 무역적자도 크게 개선되지 않음으로써 엔고의 진전을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많은 관측자들이 달러 당 1백60엔 선을 예견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두 번 째 관심사인 통화 조정속도는 국제 금융시장의 안정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주의 깊은 관찰이 필요하다. 현재의 변동 속도는 이 점에서 약간의 우려를 자아내게 만든다. 동경 외환시장 관계자들의 지적대로 비록 엔 강세가 불가피한 추세라 해도 지금의 변화속도는 너무 빠르다는데 문제가 있다. 환율변동은 아무리 안정된 시장에서도 일단 과열이 생기면 투기적 동기의 투자자들을 대거 불러들이기 십상이다.
이미 동경 시장에서는 이 같은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과거의 경험으로는 자주 시장 혼란을 야기 시켜 변동환율제도 자체를 위협하는 경우가 많았다.
급속한 엔 강세가 잘못 관리될 경우 달러 폭락과 국제 통화제도의 교란이 생기면 선진국 못지 않게 외채 국들도 큰 곤경에 빠질 수 있다. 이 점은 우리로서도 미리 경계해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행히 5월의 동경 정상회담을 고비로 G5중심의 통화 합의가 도출될 수 있다면 현재 위험 수위에 이른 엔, 달러 파동은 새로운 안정 선을 찾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우리로서는 일단 엔고현상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해서 중장기 대응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이미 올해 1·4분기 중에만 대일 적자가 11억 달러를 넘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대응방향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제시한다. 문제는 가격 경쟁력만이 아닌 기술 경쟁력이므로 활발하고 조직화된 기술혁신 투자와 수인대체, 그리고 수입선 다변화로 이번만큼은 대일 역조의 근원적 개선을 기어코 이루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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