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 본 고장서도 전승 시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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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나전칠기의 본고장인 충무에서 나전칠기는 쇠퇴 일로를 걷고있다.
지난75년 나전칠기 종사자들이 경남공예 협동조합을 만들 때 조합원이 1백20명이 고비조합원까지 합쳐 2백여 명이 되었다. 그러던 것이 86년 현재 나전칠기를 하는 조합원이 35명으로 줄어들었다.
충무에서 전통공예 연구소를 열고 나전칠기를 2대째 해오고 있는 송방웅씨(46·중요무형문화재 제54호 기능 준 보유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을 닫거나 서울 등 타지방으로 떠나갔다』고 말했다.
송씨는 그 이유로서 나전칠기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 것과 특별소비세 등 세금의 압력에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충무에서는· 나전칠기 업계가 주요 세원이 되고있는 반면 대도시에서는 세금공세가 덜하기 때문에 옮겨가는 것이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본고장으로서 전수도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현재 충무에서는 송씨가 10명을 데리고 그중 몇 명에게 전수를 하고 있을 뿐 전수· 교육기관이 하나도 없다. 충무는 1593년 이순신 장군이 지역민의 생계를 위해 13공방을 설치할 때 나전칠기 공방이 생겨 나전칠기가 이어져왔다.
일제에 의해 공방이 폐쇄되고 통영공업 전수소가 설치되었고 해방 후 통영칠공회사(민간기업)가 생겨 전수를 맡았다.
51년 도립나전칠기 기술강습소가 설립되어 정원40명· 2년제 기술교육을 실시했다. 52년에는 경상남도 나전칠기기술원 양상소로 개칭했고 62년 충무시로 이관되어 충무시 공예학원으로 바뀌었다. 71년에는 충무시 공예연구소로 개칭되어 75년까지 9백60명의 기술자를 배출하고 디자인개발·시장조사·수출품개발도 해냈다.
충무시 공예연구소는 75년5월30일 폐쇄되었다. 시의 재정부족이라는 이유였다.
이 연구소의 폐쇄로 체계적인 전수를 맡는 교육기관은 없어져버렸고 현재까지 새로운 전수기관을 세울 계획도 없다.
나전칠기는 66년 줄음질이 중요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됐고 75년 끊음질이 중요무형문화재 54호로 지정됐다. 그리고 이 같은 전통의 맥은 충무에서 이어져 왔다.
남해안 일대에서 나오는 전복 껍질을 이용해서 만드는 충무의 나전칠기는 남해안일대의 전복껍질이 세계적으로 뛰어난 빛깔이기 때문에 유명하다.
충무지방은 옻칠이 갈 마른다고 하는 섭씨 25도, 습도 75%의 기후조건도 갖추고있다. 충무가 나전칠기의 본고장이 된 것은 이 같은 여건 때문이었다.
오랜 기간 나전칠기를 만들어오면서 이 지방에서는 손으로 일일이 자개를 끊어가며 문양을 만드는 끊음질과 기교를 부리는 줄음질을 개발했고 특유의 미적 감각도 발전시켜 왔다.
충무 나전칠기의 조형미는 독특하다. 문갑 디자인의 경우 뼈대를 평면으로 하고있으며 통영소반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휘어지는 다리모양은 딴 곳에서 볼 수 없는 것이다.
송방웅씨는 『이 같은 전통적 기법과 미적 감각이 이어지고 발전시킬 수 있는 곳이 충무』라고 강조하면서 우리 전통공예의 「얼굴」 인 나전칠기를 보호 육성하는 각종 조치가 충무를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져야한다』 고 말했다.<충무=임재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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