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동결과 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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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통화의 수급 조절은 언제나 실물 경제의 변화와 돈의 흐름이 조화되도록 사전적으로 조정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경제순환의 굴곡이 심할 때는 어쩔 수 없지만 가능하면 통화조절은 예측가능하고 완만한 신축성을 가지는 것이 실물 경제에 주는 충격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그래서 급격한 통화팽창이나 갑작스런 긴축 강화는 어느 면에서 보아도 바람직스럽지 않다.
지금의 통화상태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너무 유동성이 갑작스럽게 늘어나 있는 상황이다. 물론 그럴 만한 이유가 없지는 않다. 수출부진과 경기 침체로 민간투자와 소비가 모두 위축됨으로써 경기부양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민간의 설비투자와 수출산업의 지원을 중심으로 금융 공급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그 결과가 연율 20%를 넘는 총통화 증가로 나타나면서 자칫 인플레 기대 심리를 자극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정부가 3월 이후 금융긴축을 강화한 것이나 4월 들어 일반자금 대출을 동결한 것은 모두 이 같은 통화사정과 연계되어 있을 것이다.
3월의 통화 증가율 자체는 작년 말에 비해 크게 우려할 만큼 높다고는 보기 어렵다. 특히 비교 시점인 지난해 동기는 금융긴축이 크게 강화된 시기였고 지금의 실물경제 또한 경기회복세와 투자수요가 높아지는 추세에 있는 만큼 자금 수요도 그 어느 때보다 높을 것은 짐작이 어렵지 않다.
다만 문제는 앞으로의 통화 전망이 어떻게 될 것인지가 관심사인데 이 점에서는 약간의 주의를 요하는 부문들이 적지 않다. 우선 해외부문의 통화사정이 문제될 수 있다. 올 들어 수출산업의 경기가 회복되면서 수출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이와 함께 국제 원 유가의 하락과 금리의 약세화가 지속됨으로써 해외부문의 통화위수 폭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 지배적이다.
정부 부문에서도 예산규모의 팽창에다 적극적인 정부공사의 확대로 통화의 중립을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가장 큰 관심사는 부실기업의 정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이 문제는 명확하고 객관적인 처리기준이 세워지고 집행된다 해도 한은특융 등을 통해 통화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신중한 대응과 관리가 필요할 것이다.
연내에 철수할 10개 부실 해외 건설업체의 올해 대불 규모만도 4억 달러를 넘는 다면 이 부문 또한 국내금융과 통화사정에 큰 주름을 미칠 것이다.
반면 수요측면에서는 점차 확산되는 민간 투자의욕이 왕성한 자금수요를 계속 유발할 것 또한 분명하다.
따라서 올해 통화정책의 핵심은 3저의 기회를 활용하기 위한 민간의 투자의욕을 뒷받침하면서도 인플레와 투기의 소지를 어떻게 줄이느냐에 달려 있다. 이는 곧 금융의 생산성을 높이고 선별하는 일과 통화정책의 유연성을 어떻게 살려 나갈 것인가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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