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소리」경청해야 신뢰회복"|사법 떠나는 「소수의견의 대부」이회창 대법원 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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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소수의견 판사」로 이름난 이회창 대법원판사가 5년의 임기를 마치고 오는 16일 사법부를 아주 떠난다.
35년 6월 생이니 이제 만50세. 순수 법관 출신으로는 최연소로 대법원판사가 됐고 역시 최연소 임기만료 퇴임이다.
법 이론에 관한 한 그는 소신을 굽히는 법이 없는 것으로 소문나 있다. 지난 5년간 대법원의 전체합의 판결사건은 모두 46건으로 그중 16건이 이대법원판사가 주심이었고 또 가장 많은 10건이나 소수의견을 냈었다.
또 진취적 법률이론으로 하급심 사건을 가장 많이 파기한 대법원판사다. 그래서 후배 법관들은 그를 두려워하면서도 내심 존경하며 선망의 대상으로 삼아왔다. 특히 이대법원판사는 「약자의 편에 선 판결」로 이름 높았다.
조용한 목소리에 차다는 인상을 주는 얼굴, 전혀 흐트러짐이 없는 몸가짐 등 그는 외모에서부터도 전형적인 법관이었다.
-유달리도 사법부에 관심들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어떤 자세로 법관은 재판에 임해야합니까.
▲유·무죄 판결이나 진실을 가리는데는 추상같은 기개로 타협이 없어야 합니다. 재판의 생명이 공정과 독립에 있기 때문이지요.
-가장 기억나는 판결은.
▲박세경 변호사의 계엄법 위반사건은 제가 주심이었는데 합의가 안돼 특히 머리 속에 남습니다.
또 EYC 김철기씨의 국가모독죄 사건도 잊을 수 없고….(박 변호사 사건은 계엄 해제 후 l개월간 군법회의 재판권을 연장할 수 있도록 된 계엄법의 위헌여부를 가리는 것으로 이대법원판사는 비상계엄 하가 아닌 상태에서 민간인이 군법회의에서 재판 받는다는 것은 헌법상 기본권 위배라고 무죄취지의 소수의견을 냈었다. 또 외신기자들에게 정부기관을 비판한 김철기씨 사건에서도 그는 표현·비판의 자유를 근거로 역시 무죄취지의 소수의견이었다.)
-사법부의 독립이나 신뢰회복 문제가 자주 거론되고있는데….
▲사법권 독립은 법관 스스로가 지켜야지요. 신뢰회복은 시급한 과제지만 신임 수뇌부가 신망 있는 분들이어서 잘될 것으로 봅니다. 특히 사소한 사건에도 당사자들이 부르짖는 정의의 소리를 흘려버리지 않고 신경을 쓰는 게 신뢰와 직결된다고 봅니다.(그는 현재 사법권의 독립이 어떤지는 묻지 말라며 손을 내저었다.)
-외풍의 영향을 받은 적은.
▲저는 별로 받아본 적도, 의식해본 적도 없습니다. 법관들 스스로 혹시 어떨까하고 생각하는 일이 있을지는 모르지요.
-사법부의 권능에 대한 소신은.
▲통치행위라도 국민의 기본권 제한에 관련되면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법원은 국민 기본권보장과 헌법수호의 책무를 지니고 있으므로 통치행위나 국회의 입법권능과 관련한 헌법문제에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행정부는 임명권으로, 입법부는 예산으로 사법부를 견제하지만 사법부는 행정·입법부를 견제할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그는 위헌 심사권은 마땅히 사법부로 찾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백의 임의성에 관한 획기적 판례로 수사기관의 불법구금·고문 등에 대해 제재를 했는데….
▲검찰자백의 임의성과 장기 불법구금을 문제삼아 몇 건 파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멀었어요. (그는 81변 「검찰에서의 자백도 고문으로 인한 심리상태가 계속됐다면 증거능력이 없다」 고 판결해 검찰에 충격을 줬고, 82년에는 장기구금을 문제삼아 무죄취지로 파기해 수사과정의 적법을 강조했으며, 작년에는 「공안사건이라 할지라도 피의자를 48시간이상 구금했다면 경찰관을 불법감금죄로 처벌해야한다」 고 판결, 주목의 대상이 됐었다.)
-구속학생들의 재판거부사태는.
▲한마디로 비극입니다. 학생들은 일단 재판에 응하면서 주장을 펴야 할 것이고 재판부도 편견 없이 받아들여야지요.
-지난해에는 법관인사 문제로 시끄러웠는데….
▲공정하고 납득할 수 있는 인사가 법관의 사기에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법관인사위원회 설치 등 제도적 개선이 뒤따라야겠지요 .
-법관에 대한 직업관은.
▲제가 다른 재주가 없는 탓인지 모르나 법관이란 직업자체는 더 이상 보람있는 직업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요는 어떻게 처신하고 행동하느냐에 달려있지요.
-퇴임하기에는 너무 젊지 않습니까.
▲남보다 먼저 산에 올라왔으니 먼저 내려가는 게 당연하지요. (그는 고시8회로 가장 먼저 대법원판사가 됐다. 그는 서울대법대 재학 중 고시에 합격했고 법원장을 거치지 않고 발탁돼 동기생보다 5년 이상 빠른 셈이다.)
-재임명 탈락을 예상했는지.
▲처음부터 5년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여한 없이 하고 싶은대로 했으니 시원합니다. 금년 초부터 조금씩 신변정리를 해 왔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 「점방」 을 하나 차려 변호사 생활을 해야지요. 벌어놓은 건 없고 3남매가 모두 대학에 다니니 우선 생활을 해야하지 않습니까.
법관이나 변호사나 법조인의 자세는 기본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고 봅니다. (그가 변호사개업을 하면 부자 변호사가 된다. 그는 대검 검사를 지낸 이홍규 변호사 (80)의 아들이자 대법원판사를 지낸 한성수씨의 사위. 서울 이문동 30여 평 짜리 조그만 한옥에 8년째 살고있다.)
한인옥여사(48)와 사이에 2남1녀. 자녀들에게는 청렴하고 법도 있는 생활을 늘 강조한다. 경제학을 전공하는 장남은 미국 유학 중 .매주 성당에 다닌다. <김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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