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영기업 국영화 싸고 미테랑 시라크 정면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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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파리=주원상 특파원】「미테랑」대통령과「시라크」수상 정부의「동거」(코아비타시옹) 는 애초부터「억지 사촌 식 결혼」에 비유되긴 했지만 동거 시작 한 달이 채 안된 요즘「부부다툼」이 벌써 만만치 않다.
「미테랑」대통령과「시라크」수상 정부가 정면으로 부닥친 것은 국영기업의 민영화 추진에서부터였다.
그 동안 엘리제궁(대통령 궁)의 각종 인사에「시라크」수상이 간여하지 않고 그 반대 급부로「미테랑」대통령은「시라크」수상이 추천하는 고위관리의 임명에 무조건 반대는 하지 않는 입장을 보이는 등 양자가「울타리 치기」과정에선 서로 양보하고 체면을 차렸으나 구체적인 정책추진 과정에선 억지 동거의 어려움이 드러난 것.
「시라크」수상은 지난9일 하원에서 11개 기간산업 그룹과 42개 은행·금융회사, 3개 보험회사를 향후 5년 동안 다시(?)민영화하겠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는 81년 사회당 정부 등장 이전에 이미 국영화 됐었던 광고·관광그룹 아장스 아바, 석유 회사인 엘프아퀴텐과 BNP·소시에데 제네랄·그레디 리요네 등 3개 은행, GAN·UAP·AGF 등 3개 보험회사가 포함됐다.
「시라크」수상 정부의 이런 계획에「미테랑」대통령은 당연히 쐐기를 박았다.
81년 이전에 기왕에 국영화 됐던 기업과 은행은 민영화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시라크」정부가 이들을 포함하는 민영화 법안을 마련하면 대통령으로서 서명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미테랑」대통령은「시라크」정부의 무더기 민영화 추진이 산업구조의 혼란을 야기할 뿐 아니라 헌법상의 절차문제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시라크」수상 등 우파는「미테랑」대통령의 자세가 총선 민 의를 도외시하는 월권 적 태도로 사임하지 않으려면 프랑스가 직면한 위기에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고 반박, 10일 민영화 계획을 골자로 하는 정책을 의회의 신임투표에 부쳐 지지를 얻어「미테랑」의 코앞에 들이댔다.
국영기업의 민영화문제 만큼 양자의 이견이 크게 표출되지는 않고 있으나「미테랑」대통령과「시라크」수상의 암투는 외교분야에서도 이미 치열하다.
대통령의 외교 대권을 고유권한으로 치부하면서「시라크」수상의 참견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미테랑」대통령의 강경 입장에 맞서「시라크」수상은 이미 오는 5월초 동경에서 열릴 선진7개국 정상회담에「미테랑」대통령과 함께 참석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오는 17일엔 서독을 방문,「콜」수상과 회담할 예정으로 있다.
수상 실 관계자가「콜」수상과의 회담이 의례적·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실질문제의 광범위한 협의를 위한 것이라고 시사하고 있어「시라크」수상의 서독방문이「미테랑」대통령과 큰 마찰을 빚을 공산이 크다. 「시라크」수상은 구 프랑스 권 국가 중 가장 프랑스와 밀착 돼 전통적으로「대통령의 사냥터」로 불리는 코트 디브와르도 12일 방문할 예정이다.
「시라크」수상 정부는 이밖에도 하원의 비례대표제 선거법 폐지, 공산품가격의 자율화, 외환거래의 자유 폭 확대, 신문의 독과점 규제법폐지, TV매체와 민영화폭확대, 검문 검색강화 등 각종 정책의 점차적인 추진을 계획하고 있다. 모두가 공화국연합 (RPR)과 프랑스 민주연합(UDF)의 공동 강령에 기초한 정책들로 그 동안의「미테랑」대통령 정부의 정책과는 1백80도 반대되는 것이다.
최근 유럽통화제도(EMS)에서의 프랑화 3% 평가절하를「시라크」수상정부는 찌든 프랑스경제를 바로 잡는 호기로 삼아 공무원 및 국영업체 임직원의 임금동결, 86년 예산의 1백50억 프랑 절감 등 긴축계획을 세워 공무원 노조의 반발을 사고 특히 공산당의 맹렬한 공격을 받고 있지만 아직은 좌우 공존의 터전을 굳히기에도 급급한 실정이다.
「강제결혼」또는「백지결혼」등으로 불리는「미테랑」대통령과「시라크」수상의 동거는 그러나 당분간 그대로 계속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정국의 격변을 바라지 않고 있는 국민들의 눈초리 때문에 어느 한 쪽이 먼저 동거를 했다는, 이혼의 책임을 누구도 지려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의 좌우공존은 88년 대통령 선거 때까지의 휴전,「눈가림 동거」로 보는 이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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