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한잡기|유홍속<미술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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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어느 날 어느 신문을 보아도 대학에 관한 기사가 그칠 날이 없다. 그만큼 대학은 모진 진통을 겪고 있고 대학에 대한 우리의 관심 또한 그만큼 크다는 얘기도 된다.
대학은 확실히 우리 시대 지성과 양식의 대변인 격이며 대학교수는 그 권위로서 군림한다.
그런데 얼마전 한 신문의 만평은 그 대학 교수를 진통의 틈바구니에 낀 샌드위치로 비유한 것을 보았다. 교수님들은 아마도 고소를 금치 못했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대학사회와 큰 인연은 없다. 그렇다고 아주 없는 것도 아니어서 그들이 갖고있는 고충을 대학인 아닌 사람치고는 비교적 소상히 알고있다. 그 중에는 교수라는 직함을 갖고있는 사람으로서는 차마 입밖에 내기 싫은 하소연을 들은 적도 있다.
그러나 대학사회에서 그 지성과 양식과 권위가 한쪽 구석에서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알 사람은 모두 알고있는 얘기다. 언젠가 나는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대우하는 태도가 하도 괘씸해서「대학의 파출부」 라는 잡문을 쓴 적이 있다. 한때는 보따리장사라고 업신여기던 강사들을 정당한 대학인 대접은커녕 파출부 취급하는데 대한 항변 아닌 넋두리 였다.
그런데 그 글을 읽은 내 친구인 한 대학교수는 『강사가 파출부라면 교수는 가정부』 라고 해서 우리는 큰소리로 웃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차라리 파출부 팔자가 백 배 편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파출부는 지정된 시간에 와서 주어진 일만 하고 가면 그만이지만 가정부는 온갖 잡일을 도맡아서 방도 치우고, 빨래도 하고, 애도 봐주고 애가밖에 나가서 싸우거나 다치면 주인한테 혼나야 하고…. 웃고 치울 파한잡기라기 보다는 울어도 시원치 않은 아픔이고 감당하기 어려운 괴로움에 대한 백조일 뿐이다.
그러면 대학의 현 주인님은 누구이고 진짜 주인은 누구여야 할까? 요다음엔 그걸 한번 따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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