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까지 일본을 닮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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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요즈음 우리나라에 일본 사람들의 왕래가 부쩍 늘어난 것 같다.
짐작컨대 86·88양 대회를 앞둔 우리나라에서 무언가 큰 돈벌이를 찾아보자는 생각과 일본의 엔화 강세로 인해서 일본에 비해 물가가 싼 한국에서 쇼핑과 관광을 곁들이는 재미도 볼겸해서 출입이 잦아진 것 같다.
한국을 자주 드나드는 어느 일본 사람의 말인즉『한국사람들은 머리가 좋고 손재주가 있다』는 것이다. 남의 나라 상품을 모방하는 기술이 일본 사람에 비해서 월등히 뛰어나다는 것이다.
칭찬하는 말인지 비방하는 소리인지 아리송한 얘기였다.
무언가 한국의 상품을 팔아주기는 해야겠는데 사갈 것이 별로 없다는 얘기다.
한국 사람들의 상품 중에는 자기들의 것을 모방한 것이 많고 그것도 일본에서 오래전에 유행했던 것을 그대로 모방하여 제조하고 있으니 애써 한국에서 상품을 사간들 일본에 가서 팔리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라면을 즐겨 먹던 일본 사람들의 식성이 그대로 한국에 옮겨졌는가 하면, 약방에 즐비한 각종 드링크제가 한국 사람들의 상용 음료처럼 된 것이라든가, 대중 가요의 리듬이라든가, 이 모두 일본 것을 모방하는 것에 경의를 표한다기 보다는 경멸을 뜻하는 얘기인 듯 들렸다.
말은 방향을 바꾸어 다른 길로 들어섰다. 내가 대학에 몸을 담고 있다 보니 화제는 학원문제로 옮겨졌다.
얼마전만 하더라도 한국학생들은 일본 학생들에 비해서 예의가 바르고 윤리와 도덕의 규범의식이 높은것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작금의 한국의 대학가의 면모와 양상은 완전히 달라졌다고 한다. 학생들의 데모하는 방법과 양상도 어쩌면 그렇게도 일본 사회를 혼미한 상태로 몰아 넣었던 일본학생들의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는지 모르겠다. 한국의 책방에는 일본사람들이 쓴 번역서적들이 범람한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책들 가운데는 우리의 기존 가치관과 전통사상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우리민족의 주체성과 국가관의 기본과 본질을 변질시킬 우려가 많은 책들도 적지 않았다. 또한 이러한 책들은 날개돋친 듯 젊은층에 잘 팔렸고 이 기회를 이용하여 큰 돈벌이를 하자는 출판업자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어떠한 일이든 분별성과 자제력을 잃었을때 그 결과는 예상할 수 없는 사회의 불안과 혼란을 조성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금년 대학가의 일부 대학 졸업식 광경은 예년에 볼 수 없었던 마치 수라장을 방불케하는 양상이 전개되었다고 한다.
절도와 예의는 온데간데 없고 졸업생들이 앉아 있어야할 자리는 텅텅 비어있고 학사복을 입은 졸업생들은 식장을 빠져나와 사진을 찍느라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가 하면 이것을 보고도 타이르는 학부모가 거의 없었다는 얘기를 들을때 우리는 무엇인가 중심을 잃고 사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한동안 세계의 시선은 필리핀에 쏠렸다. 필리핀 여야의 정치적 분쟁과 대립은 내전으로 확산될 위험 수위에까지 달했던 것이다. 다행히「마르코스」의 망명으로 인해「마르코스」의 독재정치는 종막을 고하고 유혈충돌의 비극은 미연에 방지되었다. 이제 필리핀 국민들에게는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화합하고 단결하며, 밝은 미래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 어떻게 노력하고 슬기를 모으느냐는 일만이 남아있는 것이다.
우리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가졌던 것을 상기해야할 것이다.
바로 그것이 10·26사태였다. 유신체제가 무너지면서 걷잡을수 없는 혼란이 빚어질 것처럼 예상되었지만 한동안 우리국민은 자제력을 잃지 않고 평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평소 우리국민에게 안보의식이 고조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정치적 혼란에 편승하여 무력남침을 획책할 북한공산집단의 도발에 대응코자하는 우리의 안보의식이 우리사회의 평온을 유지할수 있었던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자제력은 곧 상실되고 안보의식은 해이해지면서 우리 사회는 걷잡을수 없는 혼란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민주정치의 실현은 우리국민의 염원인 동시에 우리는 이 실현을 조속히 달성하기 위해서 온국민의 노력과 단결과 슬기를 모아야할 것이다. 여야간의 극한 투쟁과 학생들의 정치적 시위는 결국 우리의 바람직한 정치풍토의 조성에 커다란 장애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필리핀과는 여러모로 다른 정치적·경제적·군사적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적·혼란은 곧 북한 집단의 남침도발을 촉구하는 동기가 될 것이며 아울러 우리 경제의 몰락을 자초하는 결과를 빚어 낼 것이다.
88년에 이르러 평화적 정권교체가 실현된다면 이는 해방 이후 우리 국민으로서는 처음 실현하는 정치적 발전의 경험이라고 생각되어지며 이를 계기로 삼아 민주정치의 구현을 위해 우리는 보다 나은 경제생활의 활기를 찾을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안정된 정치풍토 속에서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인내와 자제력을 발휘하여 국민적 화합과 단결을 도모하고 슬기를 모아 평화적 정권 교체의 정치적·사회적 여건조성과 전통을 세울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것만이 민주정치실현의 수단이 될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국가안보를 더욱 견고히 하는 기본이 될 것이다. 장충식<단국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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