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더 내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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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번의 금리 인하는 일부 시설 자금에 국한된 것이지만 정부가 금리를 탄력 있게 운용하겠다는 자세를 나타낸 것은 다행이다. 금리 정책의 운용이 지금까지 다소 경직화되어온 가장 큰 이유의 하나는 금리의 경제적 기능을 과소평가 하거나 아니면 금리 정책의 효과에 대한 불확실성을 과대 평가하는 경향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 아직도 국내 금융 시장이 만성적인 과수요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관주도의 배급 금융이 지배적인 현실에서 금리가 자금 수급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측면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금융 시장의 양적·질적 성장이 예전과는 다르고 인플레 기대 심리도 70년대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지금 금리 변수가 투자와 저축, 자금 수급의 조절에 미치는 영향도가 크게 높아진 점을 주목해야 한다.
후자의 경우라면 금리 운용의 결과치 자체가 불확실하기보다는 금리 운용의 미숙 내지는 지나친 보수성이 빚어낸 결과가 아닌가 싶다. 원인이 어느 쪽이든간에 경직적인 금리 운용은 급변하는 경제 순환에 적응하는데 장애가 되며 점차 첨예화·한계화 되어 가는 경쟁 시장에서 적응하려는 경제에는 도움이 안 된다.
더우기 3저의 경제적 파급을 극대화해야 하는 지금으로서는 유가와 금리, 환율 변동의 이점을 복합적으로 상승시키는 정책 조합이 긴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그같은 정책 조합의 골격은 어떻게 산업의 전반적 효율을 높이고 경쟁력을 쇄신할 수 있는가가 중심 과제이며 그것은 다름 아닌 새로운 산업 재편과 신 투자 전략이다.
산업 재편과 신 투자는 단순히 기존 산업의 효율화로써만 접근하기보다는 장기적인 성장주도 부문의 새로운 구성과 비효율 부문의 정비를 포괄해야 한다. 이런 일은 민간의 왕성한 신 투자와 기술 혁신으로 뒷받침돼야 가능하며 지금의 정책은 그것을 고무하고 투자 여건을 정비하는 방향이 돼야 한다. 이 점에서 금리 정책의 신축적 운용은 매우 긴요하며 민간 투자 환경을 둘러싼 제반 요인들도 시급히 개선되지 않으면 안 된다.
제조업의 때 이른 사양화 현상은 전반적 효율 저하와 투자 환경의 악화 때문이며 신축성 있는 금융 정책은 이 같은 제조업의 침체와 산업의 서비스화를 막는 유용한 수단임을 강조하고 싶다.
금리와 연관된 또 하나의 중요한 측면은 저축 시장이다. 그러나 최근의 저축 동향이나 자금 시장의 사정으로 보아 금리 정책을 유연하게 운용하더라도 큰 지장은 없을 것이다.
증시와 사채 시장의 활기, 시장 금리의 점진적 하락 추세를 고려할 때 은행 금리의 탄력 있는 조정이 금융 저축을 크게 교란시킬 상태는 아니다. 또 소액 가계 저축의 유인은 이미 조세 감면의 수단으로 제공된바 있다.
문제는 이번의 금리 인하가 시설 자금 대출에 국한됨으로써 은행의 역 마진과 수지 악화가 예상되는 점이다.
이런 상태는 정상 상태로 보기 어려우므로 시기를 보아가며 역 마진을 해소하는 쪽으로 단계적인 정상화가 필요하다. 국제 금리가 계속 내림세에 있음을 고려할 때 앞으로도 국내 금리는 더 신축성 있게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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