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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점 4점에도 끈질긴 추격…박정환, 응씨배 1국 잡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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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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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8회 응씨배 결승 1국에서 박정환 9단(왼쪽)이 중국 탕웨이싱 9단에게 역전승했다. 사진은 대국 후 복기 장면. [사진 한국기원]

박정환(23) 9단이 응씨(應氏)배 결승전에서 값진 첫 승을 거뒀다. 짜릿한 역전승이었다.

초반 팽팽하다 갈수록 패색 짙어져
탕웨이싱 방심한 틈 노려 막판 역전
8시간 혈투 마무리…내일 결승 2국
박정환 “계속 나빴던 바둑이었다”

10일 중국 베이징의 쿤룬호텔 특별대국실에서 열린 제8회 응씨배 세계바둑선수권 결승 5번기 1국에서 박정환 9단은 중국의 탕웨이싱 9단을 286수 만에 백 3점(두 집 반) 차로 꺾었다.

이날 대국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난전이었다. 초반 팽팽했던 바둑은 박정환 9단이 좌변 공격에 실패하면서 탕웨이싱 9단의 우세로 넘어갔다. 중반전 탕웨이싱 9단의 중앙 대마 사활이 승부처가 됐지만 탕웨이싱의 돌이 활로를 찾으면서 박정환 9단의 패색이 짙어지는 듯했다. 다들 박 9단의 패배를 점치고 있었다.

하지만 후반, 예상치 못한 기회가 찾아왔다. 탕웨이싱 9단의 방심이 단초가 됐다. 유리하다고 판단한 탕웨이싱이 손해를 감수하며 하변 박정환 9단의 돌을 잡으러 갔고, 공격에 실패하자 슬그머니 타협을 한 것. 이후 박정환 9단이 막판 끝내기에서 치열하게 추격하며 결국 뒤집기에 성공했다.

대국이 끝난 건 오후 7시가 다된 시각. 오전 10시에 시작해 점심 시간 1시간을 제외하고 장장 8시간에 걸쳐 치러진 혈전이었다. 두 대국자 모두 시간 초과로 벌점 4점을 받았다(응씨배는 시간 초과 시 20분당 2점의 벌점을 준다). 박 9단은 대국이 끝난 뒤 “계속해서 나빴던 바둑이었다”고 짧게 자평했다.

바둑TV에서 해설을 하던 유창혁 9단은 “박정환 9단이 이렇게 끈질긴 줄 몰랐다. 이 승부를 뒤집다니 정말 대단한 것 같다”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원성진 9단은 “같은 프로기사가 봐도 정말 대단한 승부였다”고 했고, 홍성지 9단 역시 “박정환 9단의 마지막 집중력이 정말 대단하다. 짜릿한 역전승이었다”고 총평했다.

이날 승리로 동갑내기 기사인 박정환 9단과 탕웨이싱 9단의 상대 전적은 5승3패가 됐다. 지난해까지 박정환 9단과 탕웨이싱 9단의 상대 전적은 3대 3으로 팽팽했다. 하지만 지난 6월 30일 제3회 바이링배 세계바둑오픈전 32강전에서 박정환 9단이 탕웨이싱 9단에게 272수 만에 백 불계승을 거두면서 상대 전적에서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이날 승리로 그 격차를 더욱 벌렸다.

박 9단은 응씨배 우승에 바짝 다가섰다. 어렵게 역전승에 성공한 만큼 자신감이 붙어 좋은 기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유창혁 9단은 “박정환 9단이 첫 승을 가져간 만큼 2국도 좋은 컨디션으로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좋은 대국을 역전당한 탕웨이싱은 심리적으로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우승을 향한 박정환 9단의 집념은 남다르다. 박 9단은 4년 전 제7회 응씨배 결승에서 중국의 판팅위 9단에게 1대 3으로 패배, 준우승에 그친 바 있다. 올해는 유력한 우승 후보 커제 9단을 8강전에서, 이세돌 9단을 준결승에서 차례로 꺾고 결승에 올랐다. 이날 승리로 국내외 기전에서 16연승을 달리게 됐다. 그만큼 컨디션이 최고조다. 박 9단은 결승 대국 전에 “지난번에 준우승해서 많이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꼭 우승하고 싶다”고 말했다. 2국은 12일에 열린다. 3~5국은 10월 22·24·26일 열린다. 

◆응씨배=1988년 대만 기업가 고(故) 잉창치(應昌期)가 창설한 최초의 세계 기전 . 4년마다 한 번씩 열려 ‘바둑 올림픽’이라고 불린다. 우승 상금은 40만 달러(약 4억7000만원)로 세계대회 개인전 중 가장 많다. 집이 아닌 ‘점(點)’으로 승부를 가리고 덤이 8점(7집 반)인 응씨룰을 적용한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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