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비디오 인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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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거의 5년만에 뉴스 진행자의 중압감에서 해방됐다. 한마디로 시원섭섭한 마음이다. 5년동안 잃었던 밤시간을 되찾았다는데서 우선 반갑다. 그 반대로 매일 밤 9시에 어김없이 유령처럼 나타났던 그 화면에 내 모습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또 아쉬움도 느끼게 된다.
아뭏든 남들처럼 정상적인 하루생활로 되돌아 왔다는 면에서 여간 기쁘지 않다. 지난 5년동안 밤 9시마다 TV 화면에 나타나서 『안녕하십니까?』하고 인사하면 집에 있는 가족들도 화면 속의 나를 향해 『안녕하슈?』 하고 맞절을 해왔다. 이렇게 밤마다 화면 속의 만남을 계속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아내와 두 아이와의 느긋한 대화에 늘 갈증을 느껴 왔다.
당시 막 사춘기에 접어든 남매는 이제 예비 대학생으로 자랐고, 또 아버지의 뉴스 내용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하는 위치로 성장했다.
물론 뉴스 진행자로 있는 동안 친구·가족들과의 저녁 모임이나 강연회·음악회·연극구경등의 행사와는 아예 담을 쌓고 지내야 했다. 이처럼 가족과 친구들로부터의 단절된「비디오 인생」 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아쉬움보다 반가운 마음이 훨씬 더 앞서고 있다.
이제 나는 다시 보통의 방송 저널리스트로 돌아왔고, 또 잃었던 가족들과의 저녁 밥상을 되찾았으니 만큼 가족들과의 즐거운 생활 설계도 다시 꾸며야겠다. 주말 오후에는 가족과 함께 음악회나 발레·그림 구경을 다닐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2월21일 마지막 방송을 끝내고 새벽 1시가 다 돼서 집에 돌아왔을때 아내는『그동안 수고 많이 했어요. 지난 5년동안 그 어려운 자리를 무사히 지켜주신데 대해하느님께 감사해요』 라고 말했다. 또 가족 모두가 나의 결단에 박수를 보내줬다.
오늘도 네식구가 5년만에 되찾은 우리집 저녁 밥상에는 집사람의 정성과 남매의 밝은 얘기들로 아름다운 화음이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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