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석(극작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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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가위, 하면 제일먼저 생각나는 것은 어린시절, 우리들을 즐겁게 해주었던 엿장수이다. 커다란 가위로 마치 악기인양 장단을 치면서 가락까지 담아 『헌냄비 빈병…』하고 한번 불러젖히면 동네꼬마들이 모두 골목으로 뛰어나와 그를 반겼었다.
다음으로 생각나는 것은 재단사이다. 디자이너의 표본을 각양각색의 기호와 체형의 소비자들에게 응용하는 것은 재단사요, 그 재단사의 가위이다.
그러나 가위만으로는 일이 될리 없다. 어디를 어떻게 떼고 자를 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저울과 자가 있어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엿장수에게는 가위와 더불어 거울이 있었고, 재단사에게는 가위와 더불어 자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위는 가위로되 보이지 않는 가위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작품, 즉 작가의 정신을 가위질하는 가위, 「검열관」의 가위이다. 그러나 검열관이 단순히 그런 생각만으로 가위질을 한다면 그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헤겔」은 세계를 움직여 가는 정신 (weltgeist)을 얘기한 적이. 있거니와 작가의 정신은 한 개인의 정신이면서 곧 동시대의 정신이요, 그 자체가 한 생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에게 자나 저울마저도 없다면야….
작품은 곧 작가의 생명이다. 인간에 대해서는 하나님도 가위질을 하지 않았다. 인간을 『자유도덕행위자』라고 얘기하는 소이가 바로 그것이 아닌가.
두달이 겨우 지났을 뿐인데 올들어 벌써 4편의 창작극이 공론에 의해 공연이 불가능하게 되고 말았다. 이는 예년에 없던 일이다.
그러나 그런 가위질 몇 번으로 작가의·정신이, 동시대의 정신이고 생명을 잃을 수는 없을 것이란 생각도 해본다. 기실, 활자화된 작품의 어떤 부분을 가위질할 수는 있을지언정 작가의 정신, 동시대의 정신을 가위질할 수 있는 가위는 세상 천지 어디에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최인석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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