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사과 방식의 차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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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1호 31면

일본에선 매년 8월이 되면 태평양전쟁에 관한 보도가 넘친다. 6일 히로시마 원폭기념일, 9일 나가사키 원폭기념일, 15일 종전기념일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매미 울음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코시엔(고교 야구 전국대회) 열전에 감동하면서 70여 년 전에 있었던 아픈 일에 생각을 많이 하는 게 일본의 여름이다.


“한국 사람은 상대가 진심으로 사과만 하면 알았다고 해서 깨끗하게 넘어갈 수 있는데 왜 일본 사람은 진심으로 사과하지 못하나.” 내가 한국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어떨 때는 택시에서, 어떨 때는 술자리에서. 그 말대로 일본 사람보다 한국 사람이 마음을 조금 더 빨리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영화관에서 엔딩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에 조명이 켜지고 바로 일어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그렇게 느낀다. 두 시간 상영 내내 일본 사람보다 훨씬 큰 웃음소리와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는데 말이다. 일본에서는 관람객 대부분이 엔딩 음악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여운 속에 잠긴다.


일본 사람 속내는 “아니, 쉽게 넘어갈 수 있다니 우리가 몇 번이나 사과를 했는데…”라는 감정이다. 이에 대해 한국 사람은 “아니, 말을 뒤집으니 진심으로 사과한 것이 아니다”고 반론한다. 이 평행선 주장이 큰 원인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것만이 한·일 간 역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이유일까.


얼마 전 한·일 양국을 잘 아는 미국 정부 관계자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 사람은 사과를 받아들이는 쪽이 중요한데 일본 사람은 사과하는 쪽이 열쇠를 쥐고 있는 사회 아니냐고.


지난달 28일 한·일 합의에 따라 위안부 할머니 지원 재단이 출범했다. 이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한국 기자가 “재단 이름에 ‘용서’가 아닌‘ 화해’라는 이름이 들어간 것이 굉장히 의외다”고 불만스럽게 질문했다. 나는 이 질문 자체가 의외로 느껴졌다. 한국에서는 세월호 사고를 봐도 알 수 있듯이 피해자 입장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 같다. 반면 일본 사람은 아이들끼리 싸움에서도 나쁜 짓을 한 아이가 “미안해”라고 한마디 사과하면 피해를 본 아이는 “알았다(いいよ)”며 받아들이도록 교육받는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렇다. “미안해”라고 사과하는 것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 자기 입장만을 고집하지 않으면 문제는 풀릴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해결이 잘 안 되는 것을 지난 70여년의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매년 이맘때면 적절한 해답이 떠오르지 않는 어려운 문제를 앞에 두고 있는 양 한숨을 내쉴 때가 많다.


오누키 도모코마이니치 신문?서울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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