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 구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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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2월21일
중공기가 착륙하던 날 집에서 벌어진 일이다. 사이렌이 울리던 시각에 집에는 나만 빼놓고 세 식구 가족이 다 있었다. 금년 중학교에 들어가는 아들 녀석이 라디오의 긴박한 목소리에 기급을 하면서 놀라더니 옆구리에다 무엇을 챙겼길래 마누라가 살폈더니, 성경이더라고 했다. 잠시 장승처럼 서서 기도를 하더니 아주 불만스런 목소리로 자기 엄마에게 소리를 치더라는 것이었다.
『그래, 제가 뭐랬어요! 교회에 자주 나가자고 했죠!』
아들녀석은 교회에 나간지가 얼마 안됐는데, 아마 거기서 들었음직한 「말세」에 관한 설교내용과 「라디오의 급박한 목소리」가 서로 엉키면서, 뭔가 머리에 떠오른 모양이었다. 그래서 교회에 자주 나간 자기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구원을 받을 것 같았는데, 나머지 식구가 구원을 못받을까봐 안타까워서 소리친 것이리라.
이것은 우리집 얘기고 친구집에서도 일이 벌어졌다. 국민학교 5학년 여자 어린이인데, 경보방송을 듣자마자 가방에다 주섬주섬 뭔가 챙기면서 먹던 케이크 덩어리도 넣고, 라면도 한봉지 넣고, 마지막으로 앨범의 가족사진을 한장 넣더라는 것이었다. 사진은 뭣에 쓰려고 넣느냐는 엄마의 물음에 이 어린이는 이렇게 대담했다고 한다.
『이산가족이 되면 TV방송국에 가져갈 사진이예요.』
6·25동란때 방공호 안에서 아버지·어머니가 어린 우리들을 보시며 당신들은 다 사셔서 괜찮지만 어린 것들이 어떻게 될까봐 불쌍하다고 얘기하시던 것이 기억난다. 그로부터 30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똑같은 걱정 속에 있으니 언제나 우리는 어린 아이들을 놀라게 만들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이득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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