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가정방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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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자라나는 2세들에 대한 교육이 학교에만 의존하지 않고 학교와 가정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하는게 바람직하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서울시 교육위원회가 지난 75년부터 사실상 폐지해온 초·중·고 교사들의 가정방문제도를 다서 허용키로 한 것은 그런 뜻에서 원칙적으로는 수긍이 간다.
문제학생의 경우 가정환경을 비롯해서 학생의 생활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올바른 지도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예외적인 가정이 아니라 해도 부모를 만나 본다는 건 그 가정의 분위기를 알 수 있고 또 학교의 교육방침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된다.
비록 사부가 일체라는 말을 빌지 않더라도 교육이란 생활의 현장인 학교와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법이며, 따라서 교사와 학부모의 밀접한 연계는 있어 마땅하다.
그런데도 교사나 학부모나 당사자인 학생 모두가 교사의 가정방문을 그다지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그 이유는 뻔하다.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모처럼 찾아오는 선생님인데 어떻게 대접을 해야할지 곤혹스러울 것이다. 융숭한 대접에「봉투」라도 척 내놓으면 좋을 것 같지만 그럴만한 여유를 가진 집안이 몇이나 될 것이며 그런 행위가 받는 사회적 지탄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교사의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아도 바쁜데 자기가 맡은 학생 전부의 집을 방문하는 일 자체가 여간 힘드는 일이 아닐뿐더러 자칫 잘못하면 뭘 바라고 찾아온게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대다수 교사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나마 교직자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고 또 그런 교사들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개중에는 본분을 잊은 좀 엉뚱한 교사들이 있다는 것은 숨김없는 사실이다. 특히 고교교사들 가운데는 내신제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향응이나 봉투 받기를 예사롭게 여기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여기에 과잉접대 등 이른바「치맛바람」이 맞아 떨어져 사회적 물의를 빚게 된다.
78년에 가정방문제도의 부활이 운위되다가 슬그머니 꼬리를 감춘 까닭도 거기에 있다.
『향응이나 봉투를 받으면 엄벌한다』는 당국의 경고에 주눅이 든 교사들 대부분이 사실상 가정 방문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그때에 비해 방문 허용에 말썽이 생길 소지가 줄어든 것은 물론 아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고 교사의 가정방문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문제는 이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일이다.
자기 자녀만 특별히 잘 봐 달라고 교사들을 물질적으로 유혹하는 일부 학부모들의 자제가 절실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자로서 교사들의 양식이다.
우선 학교로서는 가정방문계획을 짤 때 필요한 대상과 횟수를 정하되 대상은 가정과의 긴밀한 협조가 요청되는 문제아·지진아로 한정할수록 좋을 것이다.
필요할 때는 중복될 수 있지만 문제가 없는 학생의 가정방문은 삼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정에서 접대도 차 한잔에 국한하고 면담시간도 제한하는 학교 나름의 내규도 정해야 한다.
좋은 제도가 당국의 지나친 간섭이나 교사들의 위축된 자세 때문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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