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잔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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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2윌×일
이제 나도 확실히 중년이 되었나보다. 어느새 우리집에서도 아내와 아이들 사이의 말씨름 시소게임이 시작되었으니….
『빨리 목욕탕에 들어가 씻어라』『숙제는 다 했니?』『누가 먼저 피아노 연습할거니? 오빠가 먼저 할래?』『자, 이제 TV 그만보고 각자 자기공부 좀 해야지….』
마치 잘 준비된 강의처럼 알맞은 아내의 잔소리가 올해 중3이되는 아들, 중학교에 입학할 딸쪽에 번갈아 얹혀진다. 이것말고도 아이들을 공중에 뜨게할 엄마쪽의 이유는 많다. 가끔 아이들편에 서서(특히 딸쪽에) 하늘까지 뻗쳐 올라간 애들쪽의 시소끝을 슬며시 눌러줄까하는 생각도 여러번 해봤지만 그만두고만다.
그래도 엄마쪽의 무게는 사랑이라고, 그리고 집안살림하랴, 학교나가 시간강의하랴, 그 피곤한중에 내가 안하는 자녀교육까지 세세히 챙겨주니 고마운 생각에서다. 그러던 것이 오늘아침 정작 응원을 청해온 것은 애들이 아니고 아내였다.
큰애가 피아노를 치라면 방에 들어가 30분도 못돼 되지도 않는 곡들을 둥당거리곤하니 어떻게 좀 타일러 보라는 것이다. 하긴 나도 그 녀석이 피아노 앞에서 하는 짓을 족히 알고 있었다. 「멘델스존」이나 「쇼팽」을 치는가 싶으면 어느새 될것같지도 않은 멜러디와 화음을 가지고 건반위에서 헤매고, 그러다간 또 어느 교향곡이나 실내악의 아름다운 주제를 서툴게 더듬어도 보고….
그러나 사실 나는 아이의 그런면을 더 재미있어 하고 대견스런 마음으로 건네보던 참이었다. 그림숙제를 한다고 온종일 그림물감을 풀어 여기저기 방안팎에 묻혀대기나 하는 아이, 공작숙제를 한답시고 값비싼 전자제품의 뒤판이나 뜯어 망가뜨리는 아이…. 아이들은 그런 장난을 통해 왕성한 자기의욕을 표현하고 그 일에 몰두함으로써 두뇌를 최대한으로 회전시키며 나름대로의 생각과 공상을 현실화시키는 것이다. 이는 얼마나 값지고 창의적인 자기교육이란 말인가….
우리 어른은 각기 다른 개성의 망아지 같은 어린이들에게 자신들이 갇혀있던 획일적인 사고의 올가미를 그대로 덮어씌워주는건 아닌지….
『학교에서도 말예요, 가끔 휴강도하는 교수가 명교수라고 합디다』하는 나의 은근한 암력에 아내의 대답은 『나는 아직 휴강에 익숙지 못한 시간강사예요』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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