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백70점」짜리 신랑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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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구정에 가까운 친척들이 모처럼 자리를 같이했다. 이러저러한 집안이야기들을 나누다가 금년에 여대를 졸업하는 조카의 혼담이 나왔다.
후보자는 세칭 일류라고 하는 모대학 토목과를 졸업하고 현재 모 건설회사에 나가고 있다고 했다. 이 후보자의 학력이 소개되자 어느 친척 한분이 거침없이 말했다. 『그 대학 토목과면 최소한 2백70점은 받았을테니까 괜찮구먼』. 혼인은 세상의 어떤 일반사와도 다른 특수성을 갖는 중대사다. 이런 중대사에서 사람을 점수로 환산하여 평가하는 이 기막힌 발상에 나는 할말을 잃었다.
후기 대학 합격자발표도 끝났고 이제 86학년도 4년제 대학입시 절차가 모두 끝났다. 올해는 예년보다 더 큰 입시 혼란을 겪었다. 그 어느 해보다도 눈치파와 배짱파가 설쳐댔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신문과 TV는 많은 지면과 시간을 할애하면서 대입제도 개혁을 위한 여론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수요보다는 공급이 절대적으로 많은 현 입시상황하에서는 어떤 입시 제도를 택하더라도 뾰족한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한가지 분명한 것은 현행 입시제도가 우리들로 하여금 계량화된 가치 의식을 갖도록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학들을 3백점대, 2백80점대, 2백60점대 등으로 명백하게 구분할뿐만 아니라 각 대학의 학과까지도 정확한 점수대로 분류시킨다. 그래서 어느대학 무슨과에 다닌다거나 졸업했다고 할때 그 사람의 평가를 예비고사성적 몇점대의 인간으로 환산하는 것이 용이해진다.
그리고 이러한 대입제도와 그에 적응하는 사회적 분위기 아래서 일부 사립대학은 이미지의 격상을 위해 몸부림친다. 그리하여 온갖 비교육적인 수단과 방법이 다 동원되는 가운데 3백점대 이상의 학생을 한명이라도 더 유치하고자 급급해 하는 것이다.
나는 현금의 대입제도가 존속하는 한 인간을 점수로 환산하여 평가하는 계량화된 가치의식이 우리의 인간관계를 오염시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부디 이러한 불안감을 불식시킬수 있는 대입제도가 빨리 마련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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