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퍼-골릭 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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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화학용어가운데 「하이퍼-골릭」현상이라는 말이 있다. 글자 그대로 새기면 하이퍼(hyper)는 치솟는다는 뜻이고, 골릭(golic)은 연료라는 뜻이다. 독일어에서 비롯된 말이다.
가령 두 가지 화학물질이 있는데 이들이 각각 따로 있을 때는 아무런 화학반응이 없다. 그러나 두 가지가 접촉하게 되면 발화하거나 폭발한다.
수화물(하이드러진 하이드 레이트)과 메탄올, 과산화물이 접촉할 경우다. 합성수지 원료인 애닐린과 질산이 접촉할 때도 마찬가지다.
요즘 일본『문예춘추』잡지는 바로 미국과 일본의 관계를 그렇게 비유한 글을 싣고 있었다. 원래 「카터」정권 때 통상대표부 특별고문을 지낸「리처드·리버즈」라는 율사가 한 말이다.
오늘 미국과 일본이 경제마찰을 빚고 있는 것은 바로 「하이퍼-골릭」현상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본은 오래 전부터 국내시장에서 일본 업체들과 결탁해 수입품의 관세를 올리거나 외국 기업의 일본 상륙을 교묘하게 억제하는 정책을 써왔다.
그런 배타적인 정책의 울타리를 치고 일본은 자국 상품을 미국으로 밀어내 오늘 대미 무역흑자가 5백억 달러를 넘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경제적 타격도 타격이지만 일본에 대한 질투와 선망감이 교차하는 심리적 갈등을 겪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 갈등 속에서 「하이퍼-골릭」현상이 일어나 미 의회는 대일 보복법안을 준비하고, 상원은 보복 결의안까지 채택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과 일본의 경제 분쟁에 국한된 얘기지만, 세상사를 돌아보면「하이퍼-골릭」현상은 나라와 나라 사이에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경쟁집단, 경쟁적 개인사이에서도 얼마든지 그런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을 뻔히 알면서도 내버려두면 발화하거나 폭발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우주선도 그 기본 발상은 「하이퍼-골릭」현상에 의한 연소작용에서 생기는 에너지를 이용하는데 착안한 것이다. 불기둥을 뿜으며 하늘로 치솟는 힘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좋은 목적의 예지만, 「하이퍼-골릭」을 미리 막지 못해 파국에 이르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현명한 판단으로는 상극의 경지에까지 가지 않는 것이 「하이퍼-골릭」을 막는 길이다. 거기엔 완충제를 쓰거나 완충작용이 일어나게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정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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