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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씨의 우리말 찾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작가는 우리말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가꾸는 사명을 지닌다. 풀 한포기, 나무 하나,조그만 물건에도 그 정확한 이름을 찾아 써 주고 인간과 자연의 어떠한 움직임도 살아 숨쉬는, 생동하는 모습으로 담아내면서 우리말의 맛깔을 살려내는 것이 작가의 일차척인 일이다.
그것은 작가가 우리말을 다루는 사람이고 우리말은 바로 우리 민족의 영혼과 살결을 고결하게 지켜주는 으뜸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통농경사회에서 급격한 산업화를 거치면서 도시화의 변모를 겪고 또 매스미디어의 큰 영향을 받으면서 우리말은 갈수록 건조하고 단순해져 가고 있읍니다. 「말의 경제」가 「말의 풍요」를 앗아가는 것이지요.』
소설가 김주영씨는 지금 우리가 쓰고있는 말들이 논리적이고 냉정하고 자로 잰듯이 명료하다고 말한다. 씹을수록 맛이 나는 말이 아니고 꾸밈말이 없어진, 어디선가 삐그덕거리는 소리를 내는 딱딱한 말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또 오랫동안 써봤던 좋은 표현들이 잊혀져가고 있다고 보았다.
김씨는 장편소설『인주』와 현재 중앙일보에 연재하고있는 『활빈도』등의 작품을 쓰면서 우리말을 풍요롭게 하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김씨는 풍요한 말들을 유행어가 판을 치는 도시가 아닌 아직도 사람들이 서로 가슴으로 말하는 농촌과 저자거리에서 찾아내고 있다. 『명주』와 『활빈도』를 쓰면서 그는 충청·경상·전라도 일대를 끊임없이 여행했다. 녹음기를 가지고 그곳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것을 정리하면서 쓸수 있는 말을 골라냈다.
농촌과 저자거리에서 쓰이는 말들은 단순하지 않았고 해학이 있었다.
「저녁이 됐다」라는 말은 「저녁거미가 내릴 때가 되었네」라고 쓰이고 있었다. 「방바닥이 찹군」이라는 말도 「아이구! 이 방이 사람덕볼려 그러네」하는 식으로 재미있게 쓰고 있었다.
『여행을 해야한다고 느꼈읍니다. 사전을 찾아보아도 깜짝깜짝 놀랄만한 우리말이 수없이 많습니다만 그것이 실체로 어느 대목에서 효험있게 쓰이는가를 알아내는데는 여행의 경험이 아니면 불가능하더군요. 쇠살쭈도 만나고, 작부도 만나보고, 저승문턱에 턱을 걸고 있는 노인네도 만나보고, 소리꾼도 만나고, 무당도 만나 얘기했읍니다.「명주」나「활빈도」는 그렇게 발로 쓴 소설입니다. 머리로 쓴 것이 아니지요. 한가지 중요한 것은 특히 우리말은 소리 (발음)로는 찾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가슴으로 찾아야 그것을 작가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읍니다.』
사라져 가는, 그러나 정확한 우리말 단어들을 김씨는 많이 찾아내 썼다.
『소의 중량을 늘리기 위해 억지로 물을 먹이는 것을 「각통질」이라고 쓰고 있읍니다. 염치나 체면을 차리지 않고 재물을 긁어모으는 일을 두고 「걸태질」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간단하고 정확한 우리말 단어가 있읍니다만 그것을 구태여 찾아쓰려는 노력이 부족한것 같습니다. 제가 구태여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그 구태여라는 노력이 없으면 맛깔스런 우리말 회복이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남자에게 몸을 허락 했을때 「곁을 주었다」고 하고 싸전을 「시게전」, 음식에 밴 연기의 냄새를 「냇내」, 직업적인 노름꾼을 「실레꾼」, 남이 귀찮게 굴어도 싫증내지않고 받아주는 일을 「만수방이」라고 김씨는 썼다. 배를「뱃구레」. 허기를 때우는 것을 「볼가심」, 점잔을 빼는 것을 「고달을 뺀다」로 표현했다. 죽은 사람을 낮추어 이야기할때 「식은 방귀를 뀌었다」라 하고 상대를 나무랄 때는 「몇마디 쥐어 박았다」로 표현하기도 했다.
『역사소설에서는 특히 그 당시에 쓰던 말을 찾아쓰는 것이 현장감과 리얼리티를 살릴수 있읍니다. 그래서 「인주」등을 쓰면서 말을 찾아 나섰읍니다만 그러한 말들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쓰일 수 있고 살려내야할 것이 많습니다』 우리의 생활이 각박해졌뎌라도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최근의 노력때문에 김씨가 우리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작가로 부각되었지만 많은 소설가들이 이러한 작업을 해왔다. 『관촌장필』을 쓴 이문구씨, 최근의 김원일·김인배씨와 같은 사람들이 그러한 작가다. 사어화하는 우리말을 살리려는 일군의 작가들이 있어 문단은 더욱 청신해지고 있다. <임재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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