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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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흔히 말하듯 80년대 전반기는 시의 시대였다. 수많은 시인이 탄생했고, 엄청난 작품이 발표되었고, 거창한 강령을 내세운 동인운동이 전국에 걸쳐 벌어졌었다. 그러나 이러한 물량적 팽창에 견주어 우리 시의 정신적 발전이 과연 얼마나 이루어졌던가는 냉철하게 반성해 볼 문제다.
저마다 70년대를 순수와 참여의 대립 구조로 규정하고 그 지양을 주장했지만 정작 거기에 상용할만한 작품을 우리가 얼마나 남겼는가. 기왕에 이룩한 양적 기반 위에서 앞으로는 질적 다양성을 꽃피워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꽃망울을 우리는 요즘 박상배의 시에서 볼수 있다. 문단에 나온지 거의 20년만에 긴 침묵을 깨고 다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 이 시인은 이미 『열림 닫힘 열림』『안경연습』(전망·2) 『남항일지』(시와 자유·제5집)등에서 새로운 육성을 들려준 바있다.
이번에 발표한 『바람난 시』(문예중앙·겨울) 『바다유무』(전망·3·1986)등의 시편에서도 그의 독창적 면모는 잘 나타나 있다. 앞의 시는 시작의 고뇌를, 뒤의 시는 우리시문학의 현실을 표현했다.
예컨대 『바다유무』의 전반부터 다음과 같다.
「바다가 있는 시와/바다가 없는 시가/서로서로 욕질을 한다 싸운다/싸움싸움에 걸리어 넘어진다 자빠진다.
김춘수의 시와/김수영의 시가/동남에서 서북에서 삿대질하며/서로서로 욕질을 한다 싸운다/싸움싸움에 걸리어 넘어진다 자빠진다/싸움싸움을 말리는 시들까지도 싸움 싸움에 걸리어/넘어진다 자빠진다.」
바다는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빈한한 어민에게는 힘겨운 노동의 현장이고, 한가한 여행자에게는 출렁이는 꿈의 평원이다. 바다는「현실」과 「내용」이 될 수도 있고, 「꿈」과 「형식」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바다가 있는 시」는 앞의 의미로 해석 하면 「김수영의 시」가 되고, 뒤의 뜻으로 풀어보면 「김춘수의 시」가 된다. 「바다가 없는 시」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이것은 문학이라는 동전의 양면인 동시에 삶을 바라보는 두가지 견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가 있는 시」와 「바다가 없는 시」가 동남과 서북으로 판도를 나누어 서로서로 욕질을 하며 싸우고, 그 싸움을 말리는 시들까지 싸움에 걸리어 넘어지고 자빠지는 것이 우리 문학의 오랜 현실이었다.
이 시의 후반부는 「김춘수의 시」와 「김수영의 시」가 「함께함께 공존하기를 서로서로 다리를 놓고 의좋게 왔다 갔다하기를」바란다. 「바다가 있고 없고, 없고 있고 하는 시를/딱마음 놓고」쓰려는 시인의 의도는 곧 순수와 참여, 또는 실험시와 민중시의 고질적 대립을 지양하고 삶의 총체적 인식과 복합적 형상화에 이르려는 소망과 신념이라 볼 수 있다.
이것은 또 80년대 후반기의우리 시가 지향하고 실현해야할 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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