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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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납치된 도재승 2등 서기관이 아직 불행한 상태에 있긴 하지만 생존이 확인된 것은 여간 반갑지 않다.
간접적이긴 하지만 납치단체가 드러나 곧 협상통로가 열리게 된 것도 사건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기다리던 바다.
납치단체인 「전투혁명세포」 는 벨기에에 본거를 둔 극좌단체로서 나토군사시설에 수 차례 테러공격을 가했었다는 것 외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그만큼 이 단체는 역사나 행동과 규모는 작지만 과격한 단체라는 점에서 협상이 쉬울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이 아직은 아무런 협상조건을 제시한바 없어 어떤 예측도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적으로 그들의 납치 대상이 될 아무런 이유도 없다는 주장을 하고싶다.
우리는 지금까지 레바논의 복잡한 종파·정파의 대립에 일체 관여함이 없이 엄정중립을 지켜왔다.
또 이스라엘과 미국을 상대로 싸우는 그들의 반시오니즘이나 아랍민족주의의 대의를 부정하거나 비판한 일도 없다.
더구나 우리는 레바논 파병이나 리비아봉쇄등 반 아랍조치에 참여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받았으나 모두 뿌리쳐왔다.
국제법상 신분이 보장된 선량한 외교관에게 부당한 가혹행위를 가하거나 이를 조건으로 명분 없는 요구를 제시한다면 전투혁명세포 자신에게 아무런 이익이 안되며 오히려 그 대의에 먹칠만 하게 된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야 한다.
더구나 우리가 엄정중립을 지키고 있는데 그들이 북한의 대남전략에 편승했다면 이는 지극히 부당하고도 불공평한 처사임에 틀림없다.
지금 우리는 여러가지 외교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감수해 가면서 아랍국가들과의 경제·외교관계를 확대·증진시키려는 노력을 계속하면서 회교의 국내보급도 지원하고 있지 않은가.
납치단체는 이 같은 우리 입장을 정확히 이해하여 납치된 외교관을 즉시 석방해야 한다.
위기지역의 외교관 안전조치에 대한 정부의 대비도 이 기회에 다시 한번 돌아보아야 한다.
타국의 베이루트주재 외교관들은 대부분 방탄 승용차를 이용하고 있으나 우리는 대사를 제외한 모든 공관원이 그렇지 못하다고 한다.
사건현장은 대사관 앞 번화가이고 시간도 출근러시아워였다. 따라서 도씨의 승용차에 방탄조치만 됐었다면 도주하거나 시간을 끌어 피랍을 모면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어쨌든 지금 우리의 지상과제는 도씨의 안전구출이다.
일의 성공을 외해 우리 정부는 비밀을 유지해가면서 신중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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