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무의식적 본성을 다룬 걸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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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0세기의 걸작이라고 평가되고 있는「마르셀·프루스트」의 소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원로시인이고 불문학자인 김창석씨에 의해 완역되었다. 원작의 방대함과 난해함 때문에 부분적인 번역만이 시도되었던 지금까지의 현실로 볼 때 이 작품의 완역은 역자의 문학적 정열과 학문적 집념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우리 번역출판의 풍토에서 볼 때도 획기적인 일로 생각된다. 전7권으로 번역된 이책은 상업적 성공이나 실패의 차원을 떠나 의미있는 문학출판기획의 하나로 평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인간의 무의식속에 자리잡고 있는 현실의 본질을 예술에 의해 파악하기 위해「시간의 법칙」을 벗어나고자 한 작품이다. 「프루스트」가「제임즈·조이스」와 함께 소설적 체험에 혁명을 가져왔다는 평가를 우리는 이작품을 통해 알게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제1의 주제는「시간」이다. 화자「마르셀」에 의하면 모든 사물과 존재는 시간에 의해 이산·부패·파괴되는 고통스런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과거란 영원히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 저 깊은 곳에 기절한 상태로, 그러나 언제든지 다시 나타날 준비를 하고있다.
현재의 어떤 감각이 우리의 기억에서 옛날의 감각을 되살리게 되었을 때 과거의 소생이라는 체험이 이루어진다는 이 아름답고 심오한 작품은 결국 순간적인 시간을 정복하여 영원한 시간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예술」의 특성임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의 제2의 주제는 소설의 형식이다.
줄거리가 없고「극적인 상황」이 없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을 끌고다니는 것은 행동의 필연성이 아니라「기억」의 미학이다.
따라서 작중인물들은 그들이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화자와 자주 마주치기 때문에 자주 나타난다.
일상생활에서처럼 만나지는 사람들, 그들에 관해서 들은바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축이 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의 만남이란 극적인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작가는 인물들을 행위의 관계로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이웃관계, 다시말하면 공간적인 관계로 모아놓고 있다. 이것이 바로 소설의 역사에서 혁명에 해당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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