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스승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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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9호 29면

7월의 맑음은 붓꽃이다. 붓꽃은 다만 자랑하지 않는 꽃이다. 산책길 조그만 연못, 붓꽃이 아침바람에 찰랑거리는 모습은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사는 모습은 두 부류로 나눠지는데 재산과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건강과 청정함을 유지하려고 하는 별종의 사람이 있다. 대부분의 수행자는 후자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혹여 방심하여 돈과 명예를 탐닉하게 되면 세상 사람들의 빈축을 사게 된다. ‘빈축’이란 말은 얼굴을 찡그린다는 어원에서 출발했다고 하지만 어디 살다 보면 찡그릴 일이 한두 가진가.


물에는 근원이 있고 마음에는 뿌리가 있듯, 언젠가부터 내게는 ‘마음의 스승’으로 모시는 세 분이 있다. 그러나 그분들은 내가 그의 제자인 줄 모른다. 어떤 일을 할 때는 혹시 우리 스승이었다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까 하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 멈칫할 때가 많다. 그것은 바로 스승과 나와의 보이지 않는 교감의 연결고리 때문이다. 마음의 스승은 찾아 뵙지 않아도 그분을 생각하며 나의 행동이나 마음을 바라보는 삶의 지평이다.


한 분은 부드러우면서 날렵한 표범 같다. 그래서 어떤 일이 생기면 조용히 결정을 한다, 한 분은 평범한 농부 같으면서도 전혀 표현이 없다. 그분은 “세상에 드러나지 마라.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게 도인이다” 라며 질문을 하면 확연하게 답을 준다. 나머지 한 분은 “있는 그대로 보라. 그렇지 않으면 모든 일과 번뇌에 끌려 다니는 것이다” 라며 맑게 정진을 한다.


살면서 복잡한 일일수록 빠른 결정 또는 단순하게 처리하는 게 좋을 때가 많다. 세상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할 때는 표현을 안 하고 모른 척하는 스승의 모습이 낫고, 내가 어떤 편협한 고정관념이 있어 고집을 피울 때는 “그대로만 보라”고 하신 스승을 마음에 생각하게 된다. 표범처럼 적극적이며 내면이 부드러운 스승은 나에게 ‘진종위귀(眞從爲貴)’를 알려주고, 비가 오면 괭이를 들고 밭으로 나가는 농부 같은 스승은 ‘거탁유청(去濁留淸)’을 알려준다. 생각을 하지 말고 현재 그 모습만 보라는 스승은 ‘즉심시불(卽心是佛)’을 알려줬다.


‘진종위귀’란 참으로 함께하면, 다시 말해서 진리와 번뇌가 없는 한마음을 따르게 되면 그 사람이 수행자로서 귀한 보배거울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거탁유청’이란 혼탁함을 가까이하지 않고 스스로 맑음을 유지하려는 사람은 청정한 수행자의 본래면목을 지키게 된다는 뜻이다. ‘즉심시불’은 모두가 곳곳이 부처 아님이 없다는 글귀다.


오늘 아침 누군가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다. “세상에 살면서 두 귀로 들었다고 해서 말할 것이 못되고, 두 눈으로 본 일이라 해서 다 말할 것이 또한 못 된다. 그것은 오직 수행자로서 궁색하게 되는 것임을 알라….”


정은광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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