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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향 40년 한 풀리려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일제 말기에 강제 징용으로 끌려가 소련 땅에 억류되고 있는 6만 사할린 동포 귀국 문제는 해방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소련의 강경한 태도 때문에 풀어내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다. 이번 동경에서 열린 일소 외상회담에서 사할린 억류 한국인에 관한 문제가 거론되고 또 소련측에서 일본의 민간단체인 일본 대외문화협회(회장 송전중의)에 「유대인 송환 방식」이라면 출국시킬 수도 있다는 뜻을 전달해 와 오랫동안 묵었던 숙제 하나가 풀릴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일단 주목할 만한 사태 진전으로 보여진다.
소련측의 이 같은 통고에 따라 일본 정부는 비밀리에 외무성의 「시부야」 북동 아시아 과장을 오스트리아에 파견, 국교가 없는 소련과 이스라엘간에 이루어지고 있는 유대인 출국의 오스트리아 방식에 대한 조사를 이미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대외문화협회 회장 「마쓰마에」씨는 일본 도오까이 대학 총장이자 세계유도연맹 회장으로 지난해 9월 서울에서 열린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대한적십자사 김상협 총재로부터 사할린 거주 한국인들의 귀환에 대한 협력 요청을 받고 곧 소련측과의 절충을 시도했었다. 그 결과 소련의 정치 국원 「미하일·솔로멘체프」가 일본 주재 소련 대사관을 통해 『북한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사할린 거주 한국인들이 원한다면 유대인 방식으로 출국이 허용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받았다.
사할린에는 6만명으로 추산되는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이 모두 귀국을 희망하는 것은 아니다. 귀국 희망자들은 1세들의 일부분으로 3천명 정도가 되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40년이 넘도록 사할린에 살면서 상당수가 북한이나 소련 국적을 취득했고, 또 그곳에서 생활의 뿌리를 내리고 그곳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귀국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의 소련 출국은 본인과 보증인이 제출한 출국 요청 서류를 소련 당국이 접수, 심사한 뒤 결격사유가 없으면 출국을 허용하는 방식이다.
허가를 받은 유대인들은 동구나 오스트리아·스위스 등을 통해 이스라엘 대사관으로 가게 된다. 지금까지 소련에서 이스라엘로 직접 송출된 전례는 없었다.
소련에는 현재 약 2백50만∼3백50만명에 가까운 유대계 인들이 살고 있는데 70년대초 동서 해빙 무드를 타고 해마다 4만∼5만명이 이민 허가를 받고 소련을 떠났다. 그러나 83년에는 1천3백명 정도밖에 출국 허가를 받지 못했으며 84년부터는 더욱 엄한 규제를 받고 있다.
특히 소련은 핵무기 관련 전문가나 생화학 전쟁 전문가 등의 두뇌 유출을 금지하고 있으며 소련에서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이 출국을 요청할 경우 그 동안 국가가 부담한 교육비 등을 반환하게 하고 있다.
이 같은 규제 속에서도 지난해부터 다시 소련 거주 유대인의 대규모 이주 계획이 시작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결국 사할린 거주 한국인의 출국이 실제로 실현되려면 우선 소련 정부의 확고한 태도가 결정돼야 하고, 또 한국인이 유대인과는 달리 신원 확인 기록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지 않은 문제점 등 몇 가지 해결돼야 할 난제들이 아직 놓여 있다.
사할린 거주 한국인이 유대인과 같은 방식으로 소련을 출국한다면 일단 일본을 거쳐 귀국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김징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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