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눈치작전 이제 그만|학부모·지도교사에게 들어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사상 유례 없는 눈치작전과 편법이 난무한 가운데 86학년도 대학입시가 13일 논술고사를 치르고 모두 끝났다. 시행 6년째. 더욱 심화되어만 가는 혼란과 북새통은 언제까지 계속될것인가. 학부모와 교사, 대학·문교부 관계자 좌담으로 현행 입시제도를 진단하고 그 대안을 모색해본다.
박정훈 처장=그동안 수험준비에다 진학상담, 원서접수 등을 하느라 수험생이나 학부모. 진학지도교사들이 큰 홍역을 치르셨을 줄로 압니다.
최종선씨=12년 동안의 학교생활을 그 짧은 시간에 결산한다는게 도무지 어려웠어요. 제 경우 아들의 학력고사 성적발표가 있은 뒤 지난 2일부터 학교 담임선생님과 진학상담을 시작했는데 학교측에선 너무 안정위주로만 학과선택을 권유 하는게 아닌가 하는 불만도 있었지요.

<배짱과 눈치로만 진로 결정 말아야>
그런데 막상 원서접수가 끝난 뒤엔 그 학과가 의외로 경쟁률이 높아 『학교 선생님이 오히려 더 모르는게 아니냐』하는 걱정이 생겼어요.
이권희 교사=저희 학교의 경우 3학년 학기초부터 학생들의 적성과 희망학과 등을 파악해 놓고 몇 차례의 모의고사를보며 자신들의 실력에 맞는 학교, 학과를 선택하도록 지도했지요. 학력고사 발표 후 최종 진학상담에서 배짱이나 눈치로 진로를 바꾸려는 수험생에겐 여러가지로 설득해보지만 사실 어려워요.
또 학력고사 발표를 전 후해 시중 입시학원에서 여러 종류의 배치기준표를 내놔 수험생들의 학과결정에 혼란을 주고 학교의 진학상담을 어렵게 만드는 경향도 있습니다.
정하일 실장=우선 제 변명을 하겠습니다. 현행 입시제도 아래에서는 적성과 점수외에 다른 아무런 선택자료나 기준이 없습니다. 각 학교는 다른 학교의 정보를 모르고, 서울은 지방을, 지방은 서울의 정보를 모릅니다.
이 때문에 저희 연구소에서는 서울과 지방 4백여개의 고교, 20여만명의 수험생을 상대로 모의고사를 치르고 학과선호도를 조사, 최종 배치기준표를 만듭니다. 수험생에게 도움을 주고자 만든 자료가 눈치작전에 이용되고 오히려 혼란을 가져왔다면 유감입니다.

<적성검사결과가 본인희망과 달라>
최=수험생의 학부모로서 저도 별수 없이 눈치작전에 휩쓸렸는데 제 경험담을 털어놓지요 (웃음) . 제 아들은 자연계를 공부했는데 적성검사 결과는 인문계쪽으로 나와 당초부터 약간 엇갈렸지요.
그런데 수험생 본인은 공과대학을 지망한다고 이미 원서를 4개 학교나 준비해 두었더군요. 마감날 최종적으로 서울대로 결정하고 아이를 학교에 보냈는데 마음이 안 놓여 저도 학교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접수창구는 한산하고 점수 상황판 앞에만 수험생·학부모가 몰려 생사를 다투는 듯한 눈치작전의 현장이 전개되고 있었어요. 제 생각으론 아이가 지망하는 학과의 경쟁이 높으면 안전권의 학과로 돌릴 생각이었지만 혹시 인기학과가 미달되면 그 학과로 바꿀수도 있다는 욕심을 숨길 수 없었지요. 그런데 결국은『붙고 보자』는 생각에 마감시간 10분을 남기고 비교적 한산한 창구에 원서를 접수 시켰습니다.
이 교사=원서를 직접 써주는 교사의 입장으로서는 고심도 많고 항의를 받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저는 순수과학쪽에 인재들이 진출하는 것을 지지하는 입장입니다만 올해는 특히 의대나 법대 등 인기학과를 선호하는 경향이 너무 높았습니다. 원서를 쓰면서도 실력은 차치하고 인기학과에만 집착하는 학부형과 멱살을 잡고 싸우는 일이 실제로 일어납니다. 저도『입시가 부동산 투기냐』고 대들지만 그들에겐 통하지 않아요. 이럴 땐 교사로서 허탈하기만 하지요.
박 처장=눈치작전에 학교도 한 몫을 거든다고 비난이 많은데 저희 학교의 경우 마감날엔 30분마다 접수상황을 정확히 발표함으로써 큰 혼잡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인기학과 써 달라 교사와 멱살잡이>
저희 학교에선 사인 정정은 인정하지 않았으나 마감시간 1시간전부터 사인정정을 인정해 막판 북새통을 부채질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수험생의 편의를 위해 어쩔 수 없었어요.
정희윤 과장=올해 입시에서 유례없이 눈치작전이 기승을 부려 비난이 많습니다만 본고사가 있었어도 어느정도의 눈치작전은 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당국으로서는 마감 날 오후에 너무 많은 수험생이 몰려 혼란을 빚지 않을까 우려해 그에 대비하도록 대학측에 여러번 당부했었습니다.
정 실장=올해 눈치작전이 특히 심했던 이유를 분석하면 내년엔 입시제도가 바뀌어 재수가 불리하다는 요인과 논술고사라는 새로운 변수가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 명문대 미달사태 현재론 속수무책>
이 교사=사실 점수가 안정권인 학생은 크게 눈치를 안 보는데 자신없는 수험생이 우왕좌왕 합니다. 학교에서는 논술고사가 당락엔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지도했습니다.
최=학부모 입장으로서도 사실 그 많은 수험생의 논술 답안지를 얼마만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인지 걱정이 되기도 해요.
박 처장=논술고사가 처음 거론됐을 때는 학교측에서도 그 점을 상당히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모의고사 등을 치르며 경험한 결과 점수 편차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확인 했습니다. 결국 논술고사가 학력고사·내신성적을 크게 뒤집지는 않을 것이므로 크게 불안해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최=그렇다면 안심이 되는군요.
이 교사=극심한 눈치작전의 결과, 명문대의 많은 학과가 미달사태를 빚었는데 현행 입시제도 아래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보입니다. 전년도에 경쟁률과 합격선이 낮은 대학에 수험생이 몰리는 것은 심리적으로 어쩔 수 없는 현상이죠.
고려대나 연세대의 희비극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박 처장=학력이나 적성을 무시한 눈치작전으로 합격한 학생이 입학후 큰 후유증을 겪는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만 사실입니다. 지난해 저희학교 한의예과에 1백90점짜리 학생이 운좋게 합격했는데 결국 1년도 버티지 못하고 탈락해 버리더군요.
최=수험생의 적성에 맞춰 소신지원을 하는게 바람직하다고들 합니다만 사실 그건 어려운 주문입니다. 아는 수험생중에 학교와 상의해 소신껏 지원했는데 그 학과 경쟁률이 무려 17대1로 드러나자 수험생은 숫제 앓아 누워버렸고 학부모는 학교를 무척 원망하고있어요.
T 실장=산술적인 경쟁률과 합격선은 결코 비례하지 않습니다. 예년에 보면 미달학과라 해서 지원자가 모두 합격되지도 않았고, 경쟁이 심하다고 반드시 합격선이 그만큼 높아진 것도 아닙니다.
최=이 눈치입시는 제도적인 결함에서 오는 것은 아닙니까. 언제까지나 이런 혼란을 겪어야 합니까.

<기초실력 없으면 입학 후 못따라가>
정 과장=눈치 작전은 제도적인 모순보다는 사회적 병리에도 원인이 있습니다. 제도적인 것을 바꾸면 또 다른 문제점이 나타납니다. 그동안 본고사·예비고사·학력고사 등으로 여러차례 입시제도가 바뀌었지만 어느 제도나 각각의 장단점이 있었고 그중 현행제도가 가장 낫다고 보는 것입니다.
문제는「운영의 묘」를 잘 살리는 것이고 수험생이 이에 어떻게 따라주느냐가 중요합니다. 현재 교육개혁심의위원회에서 개선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만 대학, 학과별로 특정과목의 점수에 가중치를 주는 방법등으로 제도를 보완할 것으로 봅니다.

<대학·학과따라서 특정과목 가중치>
박 처장=사회 심리적 차원에서 눈치작전을 방지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점은 동감이나 근본적으로 현행입시제도는 대학별 컴퓨터 배정과 다를바 없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제자를 뽑는 것이 순리 입니다.
논술고사도 대학별로 선발권을 주는 1차단계로 보는데 이를 더욱 확대해서 완전 선발의 자율권을 주어야 합니다.
정 과장=예전에 예비고사의 커트라인을 정하고 대학별 본고사를 치른 결과 대학마다 미달사태가 생기고 재수생이 양산되는 등 문제점이 있지 않았습니까.
박 처장=미달사태는 대학에서 걱정할 일이지 문교부가 걱정할 일이 아니니 맡겨주어야 합니다. 세간의 1류대· 2류대 구분이 무척 불쾌합니다만 세칭 2류 대학들도 제각각 교육의 질을 높이려 무척 노력하고 있고 실제 그런 방향으로 개선되고 있습니다.
이 교사=한차례의 일률적인 학력고사로 수험생의 학력을 평가해 각 대학이 필요한 학생을 뽑는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현재의 학력고사, 내신제도의 골격을 유지하며 대학 또는 학과가 필요에의해 부과하는 과목을 시험치러 합산하는 방법이 어떨까합니다.

<부작용 제일적게 제도 꼭 개선돼야>
정 실장=그 의견에 동감입니다. 2∼3차례의 학력고사를 치러 평균을 내는 방법도 있습니다. 만약 현재의 학력고사를 계속한다면 선지원 시킨 뒤 그 학과마다 학력고사의 특정과목에 가중치를 주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최=한번의 학력고사로 일생의 진로를 결정할 수 없다는 생각은 저도 동감입니다. 제 아이의 경우 학력고사장에서 재수생들이 담배를 피우는 바람에 골치가 아파 예상외로 점수가 적게 나왔다고 변명아닌 변명을 했거든요. 또 시험장에서 협박으로 커닝을 해 점수를 높이는 경우도 실제 있었다고 하잖아요.
정 실장=교육은 국가 백년대계라고 하는데 자주 바뀌면 신뢰가 떨어지고 수험생들의 불안도 그만큼 높아만 갑니다. 부작용이 적은 폭으로 유도하는 것이 어른들의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정리=한천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