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질 줄 아는 경제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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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새 경제 팀이 출범하게 되면 국민들은 그 팀에 또 무엇인가 기대를 걸게 된다.
1·7개각으로 탄생한 새 경제 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는 더 기대가 클지도 모른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 속에 태어난 팀이기 때문이다.
경제난국을 정확히 진단, 처방함으로써 우리경제를 보다 살찌울 수 있게 역량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를 걸어본다.
어떤 정책으로 경제를 얼마나 잘 요리할지는 시간이 지나면 판가름날 것이다.
따라서 새 경제 팀에 경제정책은 차치하고 책임·소신 등 문제에서 몇 가지 진면목을 보여주도록 촉구하고자 한다.
경제정책의 수립이나 집행의 현장을 지켜보는 한사람으로서 평소 이런 의문을 가질 때가 많다.
경제각료나 관리들은 어느 정도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은 경제를 마음대로 주물럭거리다가 나쁜 의미에서 그 결과가 아무리 엄청난 것일지라도 장관자리는 훨훨 털고 물러나면 그만인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현재 부실화되어 우리 경제를 크게 멍들게 한 해운·해외건설을 예로 들자면 그 모양으로 만든 장본인은 누구인가. 책임지는 사람 못 보았다. 가령 단돈 얼마 국고에서 유용했다 치면 형사처벌을 받는데, 국가경제 한 귀퉁이를 그르쳐 놓은 장본인들은 별탈이 없다.
형평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해운의 경우 한때 관계당국에서 보유 선박척수를 안 늘리면 면허를 취소하겠다고 선박회사를 윽박질러 너도나도 고물선을 사들인 소동이 벌어진 일이 있었다. 현재 해운업의 통폐합도 그 후유증이다.
공직자들의 책임감을 저 평가한다고 항의할 사람도 있겠지만 국민의 편에서 보면 「내일이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하고 자문해볼 정도로 무책임하게 일을 처리한 경우가 이제는 없다 할 것인가.
경제각료의 책임론과 관련, 또 이 같은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경제관리들은 어떤 정책대응이 새로 나왔을 때 「실기했다」고 비판하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경제정책이나 처방은 타이밍 잡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러나 체면 차리고 머뭇거리다가 실기를 함으로써 소화를 대화로 키우거나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어느 전직 경제각료 출신이 솔직한 경험담을 들려준 적이 있다.
일단 고위층에까지 보고된 정책은 좀처럼 궤도수정을 하기가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정책을 수정하려 들자니 스스로 정책을 잘못 수립했다는 과오를 인정해야되고 그 책임이 돌아올 것까지 감안하면 고집스럽게라도 당초의 정책을 계속 밀어붙일 수밖에 없는 경험을 실제 했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경제는 가야할 곳으로 안 가게되고 멍드는 것은 물론이다.
현재도 이 같은 사례가 반복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지난해에 있었던 일도 유사 케이스가 아닌가 싶다.
경기가 점점 어려워지면서 경기논쟁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정부는 「안정적 호황국면」이라고 옹고집을 부렸다. 결국 정부 스스로도 뒤늦게 불경기를 인정하게 되었고 돈도 풀고 이것저것 할만큼 다하게 되었다.
일찍부터 경기 침체건 불경기건 상황을 제대로 인정하고 서서히 대응했더라면 하반기 심각했던 실업사태 등은 좀 덜했을지도 모른다.
정부체면이 약간 깎이더라도 국민들에게 탁 터놓고 사정을 이야기한 다음 협조를 부탁하는 것이 옳은 길이라는 교훈을 얻은 셈이다. 그러려면 기계를 부리지 말고 솔직해야 된다.
이제는 실적위주나 전시효과를 노리는 정책쯤은 국민들도 판별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정부에서도 알고있을 것으로 믿는다.
당장 빛은 안 나더라도 경제 체질강화를 위해 보약을 달이는 정공법을 쓰는 경제각료가 더 절실한 것이 지금이기도 하다. 우리경제는 외관보다 뿌리를 더 다져야하는 때인 것이다. 역대 경제 팀은 주로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많이 참여한 탓으로 심심치않게 뒷공론의 대상이 되어왔다.
『한국실정은 무시한 채 미국에서 배운 실력을 실험하니 뭐가 되겠느냐』 『경제 이끌어 가는 사람 중 미국 박사 없어서 일본경제 어떻게 됐다더냐』말도 많았다. 「한국실정을 모른다」는 비판은 민의를 읽지 못한 일면도 가리키는 것이었다.
지난날 경제 팀 중 민의를 열심히 수렴한 것으로 기억에 남는 팀이 별로 없다.
오히려 최근까지도 경기에 관해 볼멘소리가 나오면 『경기 좋다고 말하는 사람 봤느냐. 경기가 전반적으로 좋고 일부업종 나빠도 나쁜 사람의 목소리가 크게 마련』이라고 민의는 묵살 당한 경우가 많았다.
정도를 벗어나 변칙을 자주 쓰다보면 정책의 신뢰성이 문제가 된다는 점도 다시 강조하고 싶다.
부실기업도 다 따지고 보면 국가·금융기관·기업에 책임이 골고루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책임질 당사자는 별로 책임을 안 지고 오히려 특혜적 조치를 받게 되었다. 정도가 아니고 변칙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개정 조감법이나 한은 특융이 바로 그것이다. 부실기업정리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 손치더라도 이 같은 변칙이 자주 동원되어서는 형평의 문제가 있어 안 된다.
김경철<본사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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