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호화판 北戴河 회의 취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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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중국 공산당은 1950년 이후 매년 여름 해왔던 베이다이허(北戴河)회의를 올해는 열지 않기로 결정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등 국가적 재난으로 흉흉해진 민심을 추스르기 위해 지도부가 모범을 보인다는 데 있지만 후진타오(胡錦濤)체제 출범 이후 계속된 일련의 개혁 조치의 연장이라는 해석도 많다.

수술대 오른 비밀정치=공산당은 올해 베이다이허 회의의 모든 일정을 취소토록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의는 매년 여름 허베이(河北)성 휴양도시인 베이다이허에서 당.정.군.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정치협상회의(政協) 5개 최고 기관 고위층 인사들이 모여 휴가와 함께 비공개로 인사와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다.

집단지도체제를 축으로 하는 중국 정치 문화의 대명사였던 베이다이허 회의가 취소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화권 언론에선 이번 결정을 胡국가주석이 주도한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홍콩 문회보 등은 "사스 광풍이 사그라든지 얼마 되지 않았고, 최근 남부지역이 대홍수로 극심한 민생 피해를 겪고 있는 점 등이 회의 취소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중국 소식통들은 "밀실에서 이뤄지던 중국식 비밀정치가 개혁의 수술대에 올랐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조치"라고 지적했다.

탈권위주의 가속화=완만한 속도로 진행되는 胡의 개혁 행보는 이번 베이다이허 회의 취소를 통해 뚜렷한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요란스럽지 않지만 "공산당이 정말 달라지는 것 같다"는 인식이 민심 속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당 총서기에 취임한 胡는 '권력은 국민을 위해 사용해야 하고 (공직자의)마음은 국민에 닿아야 한다'는 복무지침을 천명, 이를 6천6백만 공산당원의 행동지침으로 삼을 것을 주문했다.

胡주석은 지난 5월 말 해외 순방길에 오르면서 인민대회당 및 공항에서 거행되던 출국 의전 행사를 없애도록 지시했다. 아울러 중국 언론을 향해 지도자 위주로 보도하던 관행을 깨고 생활 밀착형 보도를 늘리라고 강조했다.

사스가 창궐하던 4~5월에는 원자바오(溫家寶)총리와 함께 일선 병원을 자주 찾아가 의료진을 위로하며 인민과 함께 사스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기도 했다.

과거 지도부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정치 행보였다. 일부 전문가는 "권력 기반이 아직 탄탄하지 못한 胡주석이 탈권위주의를 내세운 정치.문화 개혁을 통해 우회적으로 당 개혁을 위한 정지작업을 하고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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