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로스쿨-'고시浪人' 줄이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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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수년간 잠자고 있던 로스쿨 도입을 둘러싼 논의가 다시 불붙고 있다. 1995년 '세계화추진위원회'가 로스쿨 도입을 제안한 것을 기화로 법학교육 및 법률가 양성제도의 개선을 위한 여러 방안이 제기됐으나, 법조계의 완강한 반대로 이러한 논의는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다만 사법시험 합격자를 1천명으로 늘리는 미봉책만이 채택됐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결과는 또 다른 현상을 불러왔다. 전국 대학마다 '고시열풍'이 불어 학생들이 전공을 불문하고 사법시험에 매달리는 바람에 기초학문의 공동화현상이 심화됐다.

법과대학의 경우도 많은 학생이 '법의 정신'에 대한 고민 없이 서울 신림동으로 달려가는 바람에 기업 규모의 고시학원이 속속 들어서는가 하면, 그 일대를 떠도는 '고시낭인(浪人)'도 대폭 늘어났다. 사법연수원은 2천명에 달하는 연수생을 교육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으며,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불만이 연수생 내부로부터 터져나오고 있다.

사시 합격자 1천명 시대에도 불구하고 저렴하면서도 양질의 대국민 법률서비스는 여전히 부족하다. 변호사 공급과잉에 대해 법조계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으나, 송무(訟務) 외의 영역, 그리고 지방의 소도시나 군 단위 이하의 지역에서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변호사의 수는 더욱 필요한 상태다.

그리고 국제화 시대, 임박한 법률시장의 개방을 주도적으로 헤쳐나갈 법률가는 체계적으로 양성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기업 등 사회 전 분야 속으로 법률가를 배치하는 일 역시 미흡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법원과 교육부가 법학교육 및 법률가 양성제도의 개선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한 점은 반가운 일이다. 이러한 제도개선의 핵심은 법학교육의 정상화.선진화를 통한 법률가 양성에 있다. 즉 '시험'을 통한 법률가 양성이 아니라 '교육'을 통한 법률가 양성의 길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의대나 약대를 정상적으로 졸업하면 큰 무리 없이 의사나 약사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법대를 정상적으로 졸업하면 법률가가 될 수 있게 하는 제도개선이 없이는 대학의 고시학원화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대학교육이나 사법연수원제도로는 국제화 시대에 다른 나라의 법률가와 치열하게 경쟁해야 할 법률가를 키우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현재 법과대학 및 법학과가 이를 감당할 수 있는 것도 물론 아니다. 이들의 경우 교육과정의 개선, 교수정원의 증대, 법률실무가의 교수채용 확대, 교육의 내용과 수준에 대한 표준화, 학교 간의 통폐합 등이 이뤄져야 한다.

사법연수생 중 대다수는 변호사로 진출하는 상황에서 국가가 국민의 세금을 사용해 연수생 교육을 책임져야 할 이유가 없다. 대법원은 법관 교육을, 법무부는 검사 교육을, 대한변협은 변호사 교육을 전담하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해야 할 것이다.

변호사 수의 증가 이후 질의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문제도 변호사 수의 축소가 아니라 '맞춤형 교육'의 실시를 통하여 해결해야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은 제안은 변호사 수의 증가나 전국 법과대학 및 법학과의 구조조정을 수반하는 것이므로 법조계와 학계 모두에서 반발을 불러올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학과 법조계 모두가 현재의 질곡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이 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 일본의 경우 한국보다 늦게 논의를 시작했으나 이제 일본형 로스쿨 제도 도입을 확정해 내년부터 실시하게 됐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현재 논의되는 로 스쿨의 형태가 미국식 '전문법과대학원'이 될 것인가, 독일식 '5~6년제 법과대학'이 될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로스쿨의 실질이다.

법학교육제도의 골간을 새로이 세워, 법학도들에게 새로운 시대에 요구되는 전문적 법률지식을 심도 있고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것, 그리고 이를 졸업한 자에 한해 변호사자격시험 자격을 주는 것만이 대학교육을 정상화하고 인적 자원의 낭비를 없애며 나아가 사회 전 영역에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공급하는 지름길이다.

曺 國(서울대 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