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야를 택지로 바꿔 건축허가|북한산 잠식하는 연립주택 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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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세검정에서 구기터널을 가다가 오른쪽 북한산국립공원으로 들어서는 등산로 입구. 승가사를 가리키는 팻말이 붙은 오솔길 산허리. 수목을 잘라내고 궁전처럼 으리으리한 대형 빌라맨션이 세워지고 있다. 공정 80%.
3층이지만 바위를 깎아 축대르 쌓아 실제로는 4층높이. 연면적 1천5백여평에 건평 5백평으로 마치 구름위에 지은 고성과 같은 모습.
『안방에 말뚝을 박는 꼴이지, 풍치좋은 이곳에 집을 짓게 하다니 관청사람들 정신나간 모양이지요.』
10년동안 매주 북한산을 찾는다는 조동원씨 (43·서울남가좌동)는 『이곳이야말로 시민공원이나 마찬가진데 아무리 사유지라도 이런데에 호화주택을 짓도록 허가를 내준 관청이나, 집을 짓는 사람이나 이성을 잃은 것 같다』고 말했다.
공사장에 이어진 등산로 변에 무성했던 소나무·참나무 등이 베어지고 산중턱 바위를 깎아내 비만 내리면 급경사진 공사장에서 흙탕물과 잡목이 큰길에까지 흘러 내려 등산객과 통행인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다.
○…이 일대는 원래 지목이 임야인데다 풍치지구로 묶여 건축이 규제돼 온 곳.
그러나 81년 서울시가 구기동일대에 주한외교관공관단지를 만들면서 사유지를 수용했는데 당시 2천여평을 내놓은 지주가 항의하자 작년에 서울시가 손실에 대한 댓가로 1천5백여평의 지목을 임야에서 대지로 바꿔주고 건축허가까지 내주었다.
이에 따라 현재 9명의 개인이 합동으로 50∼70평짜리 연립주택과 부속건물을 짓고 있다.
○…구기동 승가사입구에서 3백여m 산속으로 들어간 문수사입구에 역시 산을 깎아 개인이 건평 1백평짜리 고급 레스토랑을 짓고 있으며 공관입구 길가에도 산등성이를 깎아 H차량이 36채의 사원주택을 짓고 있다.
○…산을 마구 깎아 집을 짓기는 평창동쪽도 마찬가지. S개발이 72가구의 고급연립주택을 짓고있는 평창동 169일대. 원래 야산으로 주민들의 산책코스였으나 계곡옆의 능선을 파헤쳐 3층짜리 6동이 들어서 경관이 완전히 망가졌다. 분양가격은 82평형의 경우 1억4천8백만원.
K주택이 짓고 있는 H하이츠빌라는 이 일대에 짓는 빌라맨션가운데 내부장식이 가장 호화롭다.
75평형의 경우 3개층을 터서 쓸수 있는데다 11.4평짜리 홈바와 벽난로, 10.6평짜리 차고가 있는데다 방이 4개, 화장실 2개, 전·후면발코니 2개가 달려있고 가구마다 비디오폰이 설치돼 있다.
건축관계자는 내부장식에 쓰인 나무와 대리석·조명시설이 모두 외제 또는 국산 최고급품으로 서울시내 어느 곳에 지은 연립주택보다 시설과 주변환경이 훌륭하다고 자랑했다.
이 회사는 이 연립주택을 일반에 공개 분양하지 않고 아는 사람에게만 분양, 이미 다 나갔다는 것.
○…구기·평창동일대 고지대에 호화주택이 들어서자 이미 이곳에 집을 짓고 살던 저지대 주민들이 크게 반발.
주민들은 우선 고지대에 대규모 호화주택이 들어섬으로써 밤에만 졸졸 나오던 물사정이 더욱 어렵게 됐으며 풍치도 크게 망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구기·평창동일대는 5∼6년전만해도 건축허가가 나지 않았다. 법적으로는 풍치지구로 3층이하의 건축이 가능했으나 녹지대를 보존하기 위해 행정력으로 막아왔던 것. 이 때문에 70년대초에 택지를 조성했던 것도 그대로 방치됐던 것.
그러나 2∼3년전부터 토지소유자들이 『내땅을 마음대로 이용할수 없게 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항의를 계속하자 서울시가 민원을 해소한다는 방침을 세워 고지대 일부를 제외하고는 건축규제를 푼 것.
이에 대해 서울시관계자는 『너무 오랫동안 건축을 묶어 사유지 재산권 침해가 크다는 여론이 거세 법이 허용하는 한도안에서 제한적으로 건축허가를 내주고 있다』고 밝혔다. <이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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