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함·한숨」순환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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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의 통상정책 결정과정을「고함과 한숨의 순환」현상으로 설명하는 학자가 있다. 버클리대학「로버트·패스토르」교수가 쓴『미국의 해외경제정책』(1980년간)이라는 책자에 처음 등장한 용어다.
영어로는 「크라이 투 사이 사이클」(cry-to-sigh cycle)이라고 한다.
미국의 무역적자가 늘어나고, 특정부문에서 수입이 급증하면 미국내의 이익단체나 이들의 지원을 받는 국회의원들은 수입규제를 소리 높이 외친다. 의회엔 보호주의법안들이 난무한다. 「크라이」 단계다.
행정부의 입장은 좀 다르다. 보호주의입법은 국내 물가 상승을 유도해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결국은 미국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린다. 게다가 무역 상대국의 보복을 당하기 쉽다.
이런 상황에 이르면 의회와 행정부는 대화가 찾아지고, 그 과정에서 양쪽은 타협점을 찾게 된다. 이쯤 되면 보호주의법안은 송곳니가 빠져 늑대도 아니고 양도 아닌 모양의 법이 된다.
비로소 미국내의 자유무역주의자나 행정부는 한숨(sigh) 돌리게 된다.
요즘 미국 의회가 일본·한국·대만·브라질, 그 밖의 개도국을 대상으로 각양각색의 수입 규제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은 「크라이 투 사이 사이클」에서 「크라이」단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 미국의 상하 양원엔 3백60건의 보호주의법안이 제출되어 있다.
미국의 경우 통상관계를 규제하는 직접 권한이 행정부 아닌 입법부의 손에 있는 것은 좀 특이하다. 이것은 미국 헌법 제1조 8항에 규정되어 있다.
1934년 이전까지도 미국의회는 통상정책의 전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선거구의 이익단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의원들로 구성된 의회는 걸핏하면 보호주의법안을 내놓곤 했다.
그것이 화근이 되어 30년대 세계경제는 대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결국 의회는 1934년 상호통상협정법을 가결시켜 무역 상대국과의 관세삭감을 위한 교섭권만은 대통령에게 위임했다. 그러나 백지위임은 아니고, 의회가 주기적으로 대통령의 통상교섭권을 갱신해 주고 있다.
이런 전통이 오늘 대외관계와 국가이익을 옹호하는 입장의 행정부와 국내 이익단체를 대변하는 의회 사이의 정책조정을 가능하게 만들어 놓았다.
미국의 무역 상대국들이 지금 할 일이 무엇인가는 짐작이 된다. 미국 행정부의 입장을 적절히 도와주면 「크라이」에서「사이」로 가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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