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리는 득실…엔화강세 대책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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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업계는 달러화약세로 엔화와 마르크화· 프랑화·파운드화 등 유럽통화가 강세를 보여 이에 따른 환차손이 커지자 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특히 원· 부자재 및 시설재의 대일 수입의존도가 높은 전자· 섬유· 조선 및 기계류 등 수출업계는 엔화강세의 여파로 수입가격이 그만큼 비싸게 먹혀 주름살이 늘고있다.
엔화강세로 수입단가가 올랐으니 이를 수출단가에 반영해야할텐데 그게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 9월22일 뉴욕의 선진5개국 (G5) 재무장관회담에서 달러 약세화정책을 추진키로 합의한 이후 주요통화시세가 변동하여 모처럼 일본 및 미주유럽시장에서 우리상품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진 판에 수출가격만을 올릴 경우 가격경쟁력은 그만큼 또 약화되는 것이다.
이런 실정 속에서 대그룹들은 최근 환율변동에 따른 환차손익의 계산과 대책마련에 바쁘다.
회사들이 마련중인 대책은 대략 몇 가지로 집약된다. 단기적으로는 엔화강세에 따른 수입단가상승률만큼 거래선과 협의해 최대한 수입가를 낮추도록 힘쓰고, 수출경쟁력이 있는 일본과 유럽시장을 최대한 파고든다는 것이 대책의 주류다.
중· 장기대책으로는 수출 및 수입시장의 다변화를 꾀해 무역마찰과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을 분산하고 신기술개발로 적극적인 국산대체를 서둘러 구조적인 개편을 해야겠다는 방안도 나오고있다.
G5재무장관회담이후 급등하기 시작한 엔화강세현상이 오래갈지 의문시하고있는 견해도 있다. 올 연말까지 대체로 달러 당 2백20∼2백10엔 선을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장기적으로는 달러가 다시 강세로 반전되리라고 구체적으로 내다보는 견해도 있다.
현대그룹의 경우 이렇게 내다보고 있는 것 같다.
정주영 회장은 결단을 내려 당장은 엔화강세로 환차손을 감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결제통화를 엔화로 전환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전환한다는 방침을 굳혔다는 것이다. 후에 엔화가 약세로 돌아설 때의 환차익을 계산에 넣고있는 것이다.
현대는 해외시장에서 가장 큰 경쟁국이 일본이어서 엔화강세로 자동차· 선박 등 부품의 수입단가는 높아졌지만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이 크게 강화돼 엔화강세에 따른 부의 효과보다는 정의 효과를 더 기대하고있다.
삼성은 전자· 반도체· 전관·부품쪽에서 대일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엔화강세로 그만큼 수입금액이 늘게되는데 차제에 수입품의 국산화촉진방안을 적극 검토중이다. 수입품이 국내에서 만들어 쓰는 것 보다 싸 사다 썼으나 엔화강세로 국내에서 만들어 쓰는 것이 경제적인 것으로 판단하고있다. 그러나 엔화강세에도 불구하고 일본 아닌 곳으로 수입선을 바꾸는 문제는 납기·품질 등을 고려해 아직 적극고려하지는 않고 있다는 것.
삼성은 이와 함께 외국에 나가있는 현지생산체제를 더욱 강화, 현지생산판매를 늘려 나갈 계획도 갖고있다.
대우는 엔화강세추세를 관망하기 위해 대금결제의 지급을 최대한 늦추는 한편, 차츰 일본의 거래선과 협의해 결제통화를 엔화로 하던 것도 달러로 전환할 방침이다. 또 조선 ·중공업· 전자 등 대일 의존도가 높은 수입원자재중 대만· 홍콩산으로 대체가 가능한 것은 대체할 것도 적극 검토 중이다.
포철 같은 경우는 시설재의 대부분을 일본에서 차관으로 도입하고 있어 당장은 환생손이 쌓이고 있다.
대기업들은 물론, 국내업계는 선진5개국회의 이후 국제금융시장에서 주요통화의 시세가 계속 어떻게 변동할지 궁금증이 크다. 통화시세의 변동에 따라 환차손 또는 환차익에 직결될 뿐만 아니라 수입에 따른 추가 부담, 수출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G5회의 직후는 주요통화의 환시세가 숨가쁘게 변동되는가 싶더니 요즈음은 변동폭이 안정(?) 되었는지 거의 요지부동이다. 대기업은 외환시장에 대한 전문요원이 있어 주판을 튀겨 전망도 하고 대책을 강구할 수 있으나 대부분의 기업은 그럴 능력이 없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 전문기관에서 길잡이 노릇을 해주면 업계에 큰 도움이 될텐데 그렇질 못하니 답답하다.
기업들이 앞을 내다볼 수 있도록 정부· 자문연구기관은 깊이 있는 분석과 전망을 내림으로써 기업들의 판단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이춘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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