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M] 지구 침공 영화의 신기원 ‘인디펜던스 데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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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디펜던스 데이` 스틸컷]

“할리우드 최고의 재난 블록버스터 중 하나”(엔터테인먼트 위클리) 혹은 “역대 가장 ‘치즈 맛이 나는(Cheesy, 저급하다는 뜻)’ 영화”(엠파이어). 1996년 최고 흥행작 ‘인디펜던스 데이’를 기억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어떻게 보든 이 영화가 외계인의 지구 침공을 그린 SF 블록버스터의 새 장을 열었다는 점이다.

미국·러시아·영국·독일 상공에 거대한 외계인 우주선이 동시다발로 출몰해 하늘을 새까맣게 덮는다. 피난 가는 사람들로 도로는 아수라장이 되고, 우주선이 내리쏜 레이저 빔에 미국 LA·워싱턴 DC·뉴욕의 고층 건물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 ‘인디펜던스 데이’ 이후 이러한 장면은 거대 재난을 다룬 SF영화의 공식이 되어 버렸다. 특히 백악관이 폭발하는 장면은 1990년대 할리우드 영화사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주인공 힐러 대위 역을 맡아 재치 넘치는 연기를 선보인 윌 스미스는, 이 영화로 할리우드 스타 배우 반열에 올라섰다.

‘인디펜던스 데이’의 각본을 쓰고 연출한 에머리히 감독은, 기존의 SF영화 대다수가 ‘오랜 시간 우주에서 날아온 외계인이 극 후반에야 지구의 후미진 곳이나 인간의 머릿속에 숨어드는 식으로 전개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다르게 접근했다. 아예 극 초반부터 외계인이 인류를 상대로 대규모 전면전을 펼치는 SF영화를 만들어 낸 것. 당시 제작비는 7500만 달러(약 880억원). 지금처럼 CG 기술이 발전하지 않은 데다 필름으로 영화를 찍던 시절이라, 폭격기·외계인 모선·백악관·세계 각국 도시의 거리 등을 전부 모형으로 만들어 폭파 장면을 촬영했다. 이 영화의 촬영에 쓰인 모형 개수는 당시 여느 SF영화의 두 배에 달했다.

“7월 4일은 더 이상 미국의 공휴일이 아니라, 전 세계가 ‘우리는 그저 가만히 당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목소리를 내는 날이 될 것입니다.” 극 후반 휘트모어 대통령이 전투기 조종사들을 상대로 연설하는 장면도 ‘인디펜던스 데이’를 대표하는 순간 중 하나다. 이것 역시 영화 속 대통령의 명연설로 꼽히는 동시에, 미국영화의 맹목적 애국주의를 보여 주는 장면으로 자주 언급된다.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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