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과학의 조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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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내최초의 시험관아기가 태어났다. 불임증환자 부부의 정자와 난자를 이용한 체외수정으로 얻은 수정난을 자궁에 이식, 착상 시킨 끝에 아기를 얻은 것이다.
그것은 의학적 측면에서 볼 때 불임해결의 마지막이면서 종합적인 치료방법으로 우리 국내의료진으로선 매우 의미 깊은 성과임에 틀림없다.
78년 7월 영국 올드햄병원에서 세계최초의 시험관아기가 태어난 이후 지금까지 세계적으로는 20여개국에서 8백명이상이 실례가 있는 만큼 그 사실자체가 신기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험관아기가 태어남으로써 지금까지 남의 일로만 생각되었던 다양한 윤리적·사회적·법적문제들에 대한 고려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신체적인 결함으로 아기를 얻을 수 없는 부부가 현대의학의 도움으로 아기를 얻는다는 일은 1차적으로 부부에게 기쁨을 선물한다.
그러나 좀더 생각해보면 이 시험관아기가 과연 건강하게 태어난 아기이며, 장래 건전하게 발육할 것인가에 대한 보장이 없음을 본다.
접시 위에서의 수정이라는 체외수정이 갖는 윤리적 측면, 임신중절에 대한 저항감의 희박화, 시험관태아의 이상유무를 발견하는 문제, 이상을 발견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등 허다한 문제도 있다.
시험관아기의 시술은 각 단계에서 바이러스, 오염된 공기, 자외선 등 각종 유해요인이 틈입(틈입)할 여지가 있으며 잘못된 조작으로 기형아가 태어날 수도 있다.
다행히 초기에 우려했던 만큼의 기형아출산은 없고 성장과정에서도 정상발육이 보고되고는 있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해소됐다는 뜻은 아니다.
부부의 난자와 정자외에 제3자가 제공하는 역할이 개입되었을 때 아기의 친부친모관계를 다루는 법적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영국과 일본에서는 환자로부터 떼어낸 난소를 무단 유용해 실험한다든가, 덤으로 태아를 대량배양한 일도 있었다.
이는 인체의 장기가 못쓰게 되었을 때 배양태아의 기관을 이식하겠다는 의도로서 문제를 야기했다. 하나의 인간을 다른 인간을 위한 부품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궁극적으로는 「사람이 인간의 생식을 인공화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에 귀착하다.
시험관아기가 과연 순수한 의료의 차원인가, 혹은 인문존엄의 파괴인가 하는 질문도 나온다.
국내 첫 시험관아기의 탄생은 그점에서 우리에게도 과학발전시대의 윤리문제에 대해 생각할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유전자조환과 세포융합을 통해 새로운 기능을 갖는 생명체의 출현이 가능하게된 생명공학의 시대에 우리는 엄숙하게 인간은 무엇이며 생명의 존엄은 무엇인가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다만 과학과 윤리문제만이 아니라 바른 사회의 삶을 위해 불가결한 논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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