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정규직 임금, 처음으로 대기업 50% 밑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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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협력업체에 다니던 김정희(32·가명)씨는 최근 회사를 그만두고 취업 수험서를 다시 잡았다. 대기업이나 공기업을 노리고 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대·공기업을 두드렸지만 낙방을 거듭했다. 결국 중소기업으로 눈을 돌려 취업에 성공했다. 번듯한 정규직이었다.

작년 대기업 대비 49.7%로 떨어져
대기업 비정규직보다도 15%P 낮아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회의가 들었다. 5년차 이상 선배들의 월급이 대기업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기술을 익혀 더 나은 직장으로 옮겨갈 수 있는 사다리가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1년여 만에 취준생 신분으로 돌아왔다. 김씨는 “대기업의 비정규직으로 있는 대학동기가 훨씬 많이 받았다”며 “미래를 생각하면 빨리 방향을 트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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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중소기업 정규직이 받는 임금은 대기업 정규직의 절반을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가 2015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를 분석한 결과 대기업 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총액을 100으로 봤을 때 중소기업 정규직의 임금은 49.7에 불과했다. 대기업 정규직이 100만원을 받을 때 중소기업 근로자는 49만7000원을 받는다는 얘기다.

2008년 관련 통계를 낸 이후 대기업 정규직 대비 중소기업 정규직의 임금 비율이 50% 밑으로 떨어진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다. 2014년(대기업 대비 52.3%)에 비해 2.6%포인트 하락했다. 심지어 대기업 비정규직 임금보다 적었다. 대기업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 대비 65%였다. 김씨의 말처럼 중소기업 정규직이 대기업 비정규직보다 대접을 못 받는 셈이다.

대기업 정규직 대비 중소기업 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부침은 있었지만 2012년까지는 좁혀지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2013년에 전년보다 2.6%포인트 격차가 더 벌어지더니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커졌다.

성균관대 조준모(경제학) 교수는 “2013년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이 난 이후 판결의 과실이 대기업에 집중됐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통상임금이 많아지면 연장근로수당과 같은 기본급 이외의 임금이 덩달아 오르게 된다. 이게 격차를 키우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도 비슷한 인식을 하고 있다. 이기권 고용부 장관은 “대기업은 노조의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통상임금에 상여금을 포함하는 등 판결에 따라 조정했다”며 “중소기업의 경우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 성과연동형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예전 통상임금 체계를 유지하고 있어 격차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사정은 더 열악하다. 대기업 정규직이 100만원 받을 때 35만원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65만원을 받는 대기업 비정규직과 비교하면 임금이 54% 수준에 그쳤다. 비정규직 간에도 임금 격차가 뚜렷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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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술교육대 금재호(경제학) 교수는 “대기업 비정규직의 비율은 전체 비정규직의 일부에 불과하다”며 “비정규직을 중소사업체나 영세사업체의 비정규직과 대기업 비정규직으로 구분하고, 각각의 그룹에 대한 특화된 정책수단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세대 이지만(경제학) 교수도 “대기업 근로자가 일부 양보하고, 정부는 영세업체 근로자를 위해 근로장려세제 같은 사회보장책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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