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백수’ 많은데 실업률은 겨우 3.7%, 왜 그런가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8면

기사 이미지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Q. 지난 명절에도 사촌 형·누나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형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기업 취업을 준비 중이고, 누나는 3년째 공무원시험 공부를 하고 있다네요. 청년실업률이 10%라고 하는데 왜 이렇게 주변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이 많은지 궁금합니다.

일 없어도 구직활동 안하면 ‘비실업자’…통계의 착시 때문이죠

A. 한국의 5월 공식 실업률은 3.7%입니다. 청년(15~29세)실업률은 9.7%죠. 만약 이 수치가 정확하다면 큰 걱정 안 해도 될 겁니다. 3%대 실업률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완전고용에 가깝고, 10% 이내인 청년실업률도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과연 이 숫자 믿을 만할까요? 많은 분들이 아니라고 생각할 겁니다. 통계에 맹점이 있다는 의미죠.

주 1시간만 일해도 취업자로 분류
주부·학생은 취업 희망해도
비경제활동인구로 취급해

퀴즈를 내보겠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 중인 A씨는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쓰는 게 죄송스러워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일하는 시간이 정해진 건 아니고, 편의점 사장님이 바쁠 때만 부릅니다. 일주일 동안 1시간만 일할 때도 있고, 10시간 넘게 일할 때도 있습니다.

석 달 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B씨는 적극적으로 새 회사를 찾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곳이 있다면 언제든 출근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취업자일까요? 실업자일까요? 정답이 의외입니다. 취업준비생인 A는 취업자, 당연히 실업자일 것 같은 B는 취업자도 실업자도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실업률은 매우 복잡한 계산식에 따라 구해지는데 차근히 짚어보죠.

한 나라의 15세 이상 인구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뉩니다. 경제활동인구와 비경제활동인구입니다. 대표적으로 직장인은 전자에, 학생이나 주부는 후자에 속합니다. 경제활동인구는 다시 취업자와 실업자로 나뉩니다. 지금 일하는 사람과 일할 곳을 찾는 사람으로 구분하는 거죠. 여기서 취업자의 기준이 바로 ‘일주일 1시간 이상’입니다. 그러니 얼마를 벌든, 근로형태가 어떻든 A는 취업자로 분류됩니다.

반면 B는 비경제활동인구에 속합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실업자를 이렇게 규정합니다. 지난 1주 동안 일을 하지 않았고(Without work), 일이 주어지면 일을 할 수 있고(Availability for work), 지난 4주간 적극적인 구직활동을 수행한(Seeking work) 사람입니다. 한국도 이 정의를 따릅니다. 따라서 B는 적극적인 구직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업자가 아닙니다.

기사 이미지

자료:통계청

통계청이 발표하는 실업률과 현실의 괴리는 바로 ‘취업자도 실업자도 아닌 사람’ 때문에 발생합니다. 실업률은 ①경제활동인구(②취업자+③실업자)를 실업자로 나눈 개념입니다. 여기엔 비경제활동인구가 개입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비경제활동인구 중에도 취업을 희망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습니다. B씨 같은 사람이 대표적이죠. 이런 사람을 통계에서 아예 빼버리니 자연히 실업률이 낮게 계산됩니다.

문제는 이런 비경제활동인구가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 전체로는 1600만 명이고, 이 중 일할 의사가 있는 잠재경제활동인구는 162만 명이나 됩니다. 다른 계산 방법이 있습니다. ILO가 권고하는 방식인데 한국에선 고용보조지표라고 부릅니다.

복잡하지만 이 참에 공부를 해두죠. ①과 ③은 그대로 둡니다. 그 다음 ②을 ④시간관련 추가취업가능자와 ⑤일반 취업자로 구분합니다. 그런 다음 기존 통계에서 사용하지 않았던 비경제활동인구 중 ⑥잠재경제활동인구를 뽑아냅니다. ④는 주당 근로시간이 36시간 미만이면서 추가 취업을 희망하는 사람, ⑥은 구직활동 여부와 구직 시차 때문에 통계에선 빠졌지만 일할 의사가 있는 사람입니다.

고용보조지표의 계산식은 (③+④+⑥)/①+⑥}*100입니다. 쉽게 말해 기존 실업률을 산정할 때 포함하지 않았던 아르바이트생이나 취업준비생, 일할 생각이 있는 주부 등을 실업자로 보고 계산한 겁니다. 이런 사람이 212만 명입니다. 이들을 포함해 계산한 고용보조지표는 얼마일까요? 무려 10.8%입니다. 공식 실업률보다 3배 이상 높습니다.

통계청은 2015년 1월부터 기존 실업률과 함께 고용보조지표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식 통계는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이름부터 ‘보조지표’입니다. 정부만 빼고 학계와 언론은 이미 이를 실질실업률로 보고 있습니다. 3.7%인 실업률이 고용보조지표에서 10.8%로 점프하는 걸 보면 9.7%인 청년실업률도 실제로는 25% 이상일 것이란 추정이 가능합니다.

기사 이미지

자료:통계청

고용보조지표 역시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지난 13일 현대경제연구원은 ‘청년 고용보조지표의 현황과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지난해 8월 기준 공식 청년실업률은 8.0%, 공식 실업자는 34만5000명이지만, 체감 실업률은 이보다 4배 높은 34.2%, 체감 실업자는 179만2000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기존 고용보조지표에다 ‘비자발적 비정규직(45만8000명)’과 ‘그냥 쉬고 있는 청년(19만7000명)’까지 넣어 계산한 수치입니다. 임금이나 공적연금, 교육훈련 등 여러 면에서 자발적 정규직에 비해 턱없이 열악한 근로 환경에 처한 청년들도 사실상 실업상태에 놓인 것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동시에 그냥 쉬고 있는 청년 역시 노동시장으로 끌어내야 한다는 점에서 고용보조지표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현대경제연구원의 주장은 과한 측면이 있습니다. 근로 환경을 기준으로 실업자를 판단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거든요. 모든 정규직의 근로환경이 비정규직보다 나은 건 아니니까요. 사실상의 취업포기자인 ‘그냥 쉬고 있는 청년’을 실업자에 포함시키는 것 역시 올바른 통계 작업이라 보긴 어렵습니다.

이에 대해 유경준 통계청장은 “불황 탓에 고용 환경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왜곡에 가까운 이런 분석은 국가정책 설계나 국민정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만약 이렇게 통계를 낸다면 국제적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정부도 지금의 실업률 통계가 현실과 맞지 않다는, 그래서 청년고용의 특수성을 고려한 새로운 실업률 지표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만큼은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