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건강한 지식 생태계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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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3호 30면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기 쉽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은 신중하게 처신하며, 끊임없이 학습하고 숙고한다. 자신이 남보다 항상 우수하다는 착각은 지식인이 쉽게 빠지는 교만의 함정이다. 학자나 지도자는 이 교만을 경계해야 하며,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항상 자문하고 결과를 반성해야 한다. 이러한 자세는 국가 경영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옛날 현명한 군주는 현자(賢者)를 가까이 두었으므로 춘추전국의 내로라하는 유세객(遊說客)들이 국경을 넘어 출세하는 기회를 얻지 않았던가. 이런 모습은, 오늘날 들어서 국가가 연구기관을 보유하고 우수한 인력을 유치하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정보가 모이면 지식이 되고, 지식이 쌓이면 지혜가 생긴다. 그런데 우리는 정보와 지식의 부족으로 국란을 초래한 사례가 많았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을 몰랐고 조총도 몰랐으며, 만주의 정세를 몰라 호란(胡亂)을 겪었다. 심지어 6·25 전쟁은 발발 이후에야 사태를 파악하였으니 또 이러한 역사가 반복될까 두렵다.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할 때 이런 문제가 생긴다. ‘불편한 보고’를 서로 미루고 ‘불편한 진실’은 보고서에서 삭제하기 때문이다. 어떤 지도자는 하나의 정보만 믿고 확인 없이 중요한 사안을 처리하고, 맥락도 모른 채 중요한 판단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 이것이 바로 조직사회에서 흔히 발생하는 ‘편견과 왜곡’이다.


정부처럼 큰 조직에서는 이런 문제를 구조적으로 막아야 한다. 정부가 정책 결정에서 전문가 ‘개인’의 의견을 듣는 방식도 이제 한계를 둬야 한다. 그 전문가가 비록 교수일지라도 이익집단(대학 혹은 전문분야)을 대표하기 때문에 객관성을 보장할 수 없다. 국정 운영에서 전문가의 자문(諮問)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특정한 ‘ 사람’(정치인이나 공무원)이 아니라 ‘시스템’이 정책을 주도하는 형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이 일관성을 가질 수 있다. 특히 요즘처럼 정책 오류가 여러 곳에서 일어난다면 공무원 주도의 정책운영 체계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정책 전문성이 한계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책에는 근본적 결함이 있다. 그것은 무사안일(교만)과 비과학성(무지·편견·왜곡)으로 특징되며, 관료주의와 집단이기주의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먼저 ‘지식생태계’를 풍부하고 건강하게 구축하고, 여기서 과학적 지식과 인문적 지혜가 결합된 전문적 정책지식을 얻어야 한다.


둘째, 정책은 경험이 환류되고 평가가 가능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셋째, 정책 집행은 국가 이익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 부처나 공무원의 이익에 초점을 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것이 곧 정책의 과학화와 체계화다. 그런데 한국의 지식생태계는 풍부하지 못하다. 현재 국·공립과 정부출연 형식의 연구기관을 통틀어 총 2만 명이 안 되는 전문인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매우 빈약한 수준이다. 적어도 5만 명은 유지해야 독일(약 8만 명), 프랑스(약 7만 명)와 비슷해진다. 민간 부문도 빈약하긴 마찬가지다. 한 대기업 경제연구소의 경우 200명 내외의 연구원을 보유하고 있는데 일본 노무라연구소(4000명), 미국 바텔연구소(2만 명)와 크게 비교된다.


우리 지식생태계는 건강하지도 못하다. 연구기관이 정부의 시녀와 같다고 표현한다면 섭섭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실제로 연구기관들은 문제가 있는 것은 알지만 정부지원금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들 한다. PBS(인건비를 연구과제 수주로 충당하는 제도)를 도입했으니, 연구원은 예산을 쥔 공무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지식인의 직언(直言)을 가능하게 하는 학문의 자유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대학도 거대한 이익집단으로 변했다. 국가 의사결정 채널(고위공직자 또는 각종 심의·평가·자문위원)에 자기 학교 교수를 앉히려고 물밑 경쟁을 한다.


정부의 전문성도 문제다. 연구의 속성과 연구자의 속성을 파악하고 생태계를 육성·활용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선진국은 인력 개발을 각별히 지원하는데도 우리는 그 기본개념조차 모르니, 한국의 연구원들은 떠나고 싶어 하고 외국에서는 누구도 오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해선 지식생태계의 구축이 어렵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연구실적을 얻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생태계를 키우는 일과 종합 조정에 집중해야 한다. 정부연구기관의 연구실적이란 사업부처가 프로젝트로 요구한 문제해결의 열쇠여야 하며, 논문과 특허는 그 부산물이어야 한다. 이 질서를 깨고 미래부가 연구실적에만 집착하니, 생태계가 망가지고, 공공기술에는 구멍이 생기며, 국책연구는 활용성이 낮은 기술개발로 끝나는 것이 아닐까.


이제 정부는 앞에서 끌고 가지 말고 뒤에서 밀어주는 방식으로 국정 운영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연구원이나 기업인이 앞에서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구조로 전환해야 할 때다.


노환진대구경북과학 기술원(DGIST) 기초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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