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기의 反 금병매] (9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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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서문경이 맹씨를 가까이서 보니 설씨가 말한 것과는 달리 그저 아담한 키에 불과하였다. 설씨는 서문경에게 맹씨를 소개하면서 맹씨가 얼마나 늘씬한 키인지 감탄사를 섞어가며 치켜세우지 않았던가. 자고로 중매쟁이의 말은 숨소리 빼놓고는 거짓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니, 숨소리마저 거짓인지도 모른다.

티 하나 없이 백옥같이 고운 얼굴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본 맹씨 얼굴에는 주근깨가 제법 군데군데 나 있었다. 하지만 주근깨로 인하여 얼굴이 밉게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주근깨들이 얼굴을 귀염성 있게 보이도록 하였다.

회색이 조금 섞인 남빛 저고리와 붉은 빛이 감도는 치마를 입고 있는 맹씨의 몸매는 살이 찐 편도 아니고 마른 편도 아니어서 건강미가 느껴지기도 하였다.

서문경은 얼른 시선을 아래로 돌려 맹씨의 치마자락 사이로 살짝 드러난 발을 훔쳐보았다. 그 발도 금련처럼 앙증맞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큰 편도 아니었다. 은련 정도 되는 발이었다. 말하자면 맹씨는 모든 것이 적당하게 갖추어진 용모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재산만큼은 웬만한 부자 부럽지 않게 갖고 있는 여인이었다. 몸에 걸치고 있는 장신구들만 보아도 그러한 부가 느껴졌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사치스럽다고 여겨지지는 않았다.

두 귀에는 진주 귀고리가 달려 있고, 봉황을 조각한 금비녀가 비스듬히 머리에 꽂혀 있었다. 가슴에는 영롱한 옥구슬들이 달려 있어 맹씨가 걸음을 걷거나 몸을 움직일 적마다 청아한 소리를 내었다.

설씨의 안내로 맹씨가 서문경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서문경이 다시 한번 맹씨를 훑어보자 맹씨는 무안한 듯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붉혔다.

"남편이 돌아가신 지 일년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첫 아내를 잃은 지 3년이 넘었습니다. 부인을 제 아내로 삼아 집안일을 돌보게 하고 싶은데 부인의 의향은 어떠하신지요?"

"설씨 아줌마를 통하여 어르신에 관한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어르신의 부인이 될 자격이 있는지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제가 시집을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집안 어른이신 시고모님께서 허락해주셔야 합니다."

"고모님의 허락은 이미 받아놓았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설씨가 양노파로부터 맹씨 재혼 허락을 받은 경위를 늘어놓았다. 설씨의 이야기를 들은 맹씨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그럼 시고모님의 뜻을 따라야지요."

서문경은 맹씨의 손을 덥썩 잡고도 싶었으나 초면에 실례가 될 것 같아 꾹 참았다. 서문경이 약간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부인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요?"

"제 나이는 올해 서른입니다."

억, 한순간 서문경은 목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또 중매쟁이 설씨가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설씨는 분명히 맹씨 나이가 스물여섯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 말을 덜컥 믿어버린 자신이 어리석게만 여겨졌다. 아무리 중매라 해도 그렇지 나이를 네 살이나 속이다니.

서문경이 흘끗 설씨를 쳐다보자 설씨는 하녀에게 뭐라뭐라 하며 딴전을 피웠다. 이제 와서 어떡할 거냐는 배짱이었다. 하긴 서문경으로서는 서른 살이든 마흔 살이든 이만한 재산을 가진 여자라면 싫다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맹씨가 재산을 제대로 챙겨가지고 나오지 못하면 맹씨의 나이가 크게 문제될 소지도 있었다. 스물여덟인 서문경이 두 살이나 많은 누님 같은 여자를 부인으로 맞이하는 것이 아닌가. 재산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아리땁고 싱싱한 이팔청춘 여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서문경은 갑자기 맥이 빠지는 기분이었지만 은근히 미소를 띠운 채 하녀가 가지고 온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그 찻잔에는 귤을 썰어 꿀에 재워 만든 밀전금등자차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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