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 스파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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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독을 비롯한 유럽 각국은 요즘 동독 간첩사건으로 술렁거리고 있다.
특히 서독의 수도 본은 동독 스파이들의 온상이 되다시피 했다.
이번 서독의 간첩사건은 지난 4일 「마르틴·방게만」경제상의 12년된 여비서「소니야·뤼네부르크」(60)가 종적을 감춘데서 부터 막을 올린다. 이어 동구출신 피난민단체연맹간부 「우슬라·리히터」를 포함한 3명의 간첩 혐의자가 지난 3주동안 연속적으로 항방을 감췄다.
그러나 이번 스파이사건은 서독의 방첩기관인 헌법보호청 (BFV)고위간부인 「한스· 요아힘·티트케」(48)가 지난 19일 동독으로 탈출, 정치적 망명을 요청함으로써 절정에 이르렀다. 마치 「007」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것 같은 사건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대통령실의 미혼여비서 「마가레테·회케」(51)가 간첩혐의로 체포되고, 「콜」수상의 비서 12명도 관련되었다고 신문에 보도되었다.
특히 「티트케」는 동독에서 활약하는 1백60명의 서독 첩보원 명단과 활동상황을 체크하는 책임자다.
서독이 동구권 「스파이의 소굴」이 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동독 스파이가 서독에 잠입하기 쉬운 것은 우선 이들이 한해 4만명에 달하는 서독 이주 동독인에 섞여 정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언어나 생활습관에 전혀 장애를 받지 않는 것도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일단 서독에 잠입하면 선량한 시민, 모범시민 행세를 하며 서독사회 어느 곳에나 깊숙이 침투할 수 있다.
서독 연방정보국 「마이어」정보부장에 따르면 현재 서독에서 암약하고 있는 동독 스파이는 3천∼4천명으로 추산되며, 비공식 추계로는 1만7천명 정도라고 한다. 그 중에는 여성도 2천명이나 된다.
과거 20년간 서독에서 일어난 스파이 용의사건은 대충 3만5천건에 달하고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동독국가보안성(MFS) 산하에 있는 대외공작국 (HVA) 이 주역이다.
소련의 KGB지도하에 2차대전 종전과 함께 발족한 이 기구는 195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했다. 정규직원은 약 1만2천명이며 간부는 거의 모두가 현역군인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독의 간첩사건은 도무지 남의 일 같지 않다. 더구나 우리는 동독보다 호전적인 집단과 이웃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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