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노이로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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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병현 부총리는 21일의 기자간담회에서 『성장에 치중하면 국제수지가 문제된다』고 지적하고 『국제수지를 악화시키면서까지 성장정책을 쓸 생각은 없다』고 선언(?)했다. 마치 국제수지가 나빠지고 외채부담이 늘어나는 것이 성장 때문이라는 얘기로 들린다.
그러나 성장 없이 국가경제의 발전은 있을 수 없다. 우리의 경제력이 북한보다 5배나 앞서고 있다고 자랑하는 것도 자유경제를 바탕으로 한 고도성장의 결과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경제정책의 산실이라고 할 경제기획원에는 언제부터인지 성장을 위험시하는 풍조가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 같다.
3.2%라는 상반기의 낮은 성장률이 발표되기 불과 며칠을 앞두고 문희갑 차관은 『지금의 성장률이 오히려 높다고 본다』는 말을 한 일도 있다. 성장이라는 말을 입에 담기조차 조심스런 분위기다.
물론 60년대부터 70년대에 걸친 고도성장 과정에서 인플레심리의 만연이나 외채부담의 증가라는 부작용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같은 결과는 통화관리의 잘못, 혹은 효율을 외면한 투자정책에 있었던 것이지 성장 그 자체에 잘못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외채와 원조로 경제부흥에 착수, 고도성장을 이룩하면서 빚도 갚고 물가도 안정시킨 나라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성장을 위험시하는 풍조는 사람의 잘못으로 빚어진 결과를 성장의 속성인양 책임을 떠넘긴 데서 온 결과가 아닌가 싶다.
오히려 외채를 갚아 나가려면 남보다 높은 성장을 이룩하고 남이 5를 벌 때 우리는 10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 사리에 맞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미국이 6.8%, 일본이 5.8%의 성장을 이룩하면서 호경기를 구가한 작년한해는 수출에 목줄을 걸고 있는 우리에게 절호의 찬스였다고 할 수 있다. 국제원자재 값이 안정돼있어 물가를 자극할 위험도 없었다.
미국이 호경기를 누리며 달러시세가 올라가자 일본은 환율을 달러 당 2백24엔(84년3월)에서 2밴59엔(85년2월)으로 l5.2%나 올리면서 수출을 확대, 미국경기의 단물을 빨았다. 구주 각 국도 영국이 25%, 서독이 18.5%, 프랑스가 27.5%나 환율을 올려 수출에 재미를 봤다.
그런데 우리만은 수출이 늘까봐 걱정이라도 하듯 대기업에 대한 수출금융을 동결하고 환율을 실세이하로 묶어 놓고 있었다. 경기과열이 두려워서 취한 조치였다는 얘기다. 금년 상반기의 저 성장도 같은 정책이 빚은 주름이다.
증상이 이 정도가 되면 성장노이로제, 혹은 성장공포증이라는 변명이라도 붙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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