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권 보수-진보 경제브레인 구조조정 한목소리 낸 이유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역대 정부의 경제정책 수립에 주요 역할을 한 경제학자들이 30일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공동성명을 내 주목된다. ‘구조조정 새 해법을 찾아야 한다. 현 상황을 우려하는 지식인들의 고언’이라는 제목의 성명이다.

이들은 이날 “진영논리를 떠나 범정부 차원의 컨트롤 타워를 조속히 세워야 하며, (구조조정의) 과정과 결과는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고 밝혔다. 성명에 참여한 경제학자는 총 10명으로 6명만 이름을 공개했고, 4명은 사정상 실명을 밝히지 않았다. 김광두 서강대 명예교수(박근혜 정부), 백용호 이화여대 교수(이명박 정부), 김병준 국민대 교수(노무현 정부)와 진보·중도 성향의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 김호기 연세대 교수 등이다.

이들은 이날 성명을 낸 계기에 대해 “이분법적 진영논리로 대립하는 한국사회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지식인의 도리가 아니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부실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표출된 경제정책 컨트롤 타워 부재와 관료들의 책임회피를 방치하면 한국경제의 생존조차 보장할 수 없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됐다. 구조조정은 여야 정쟁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우선 구조조정 컨트롤 타워를 세우되 밀실에 숨지 않고 국회와 협의하고 국민과 소통하는 통로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주주·경영진은 물론 국책은행과 청와대·관계부처를 막론하고 부실에 책임이 있는 주체에게 응분의 법률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도 했다.

이와 함께 구조조정 비용 확충을 위해 추경·공적자금·양적완화 등을 고려하되 최소비용 원칙, 공평 손실부담 원칙 하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구조조정을 4차산업혁명과 산업구조 재편 관점에서 국가발전 비전으로 승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들은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정치권이 솔선수범해 기득권과 진영논리 집착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 모임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김광두·김병준 교수 주도로 만들어졌다. 이후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비공식적으로 현안을 논의했다. 한 참석자는 “가볍게 세상사를 논의하는 자리”라고 소개했다. 그러던 중 이달 23일 모임에서 기업 구조조정에 대해 논의하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오늘 논의 내용을 공개 발표하자’는 뜻이 모아져 발표하게 됐다고 한다.

성명서 배포는 김상조 교수가 맡았다. 역대 정권과 큰 인연이 없는 진보 중도 성향 학자라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역대 정권 브레인이 발표하면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김상조 교수는 “향후 공식활동이나 정치적 행위 등은 하지 않고 비공개 모임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unipe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