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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20)"통통배 밑창에 숨어 일본 밀항"-본사, 자유당실력자 장경근씨 일기입수, 독점연재(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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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자유당시대가 막내린것은 25년 전이다. 그럼에도 그 시대는 기억의 저 너머에 있다.
그만큼 지난 4반세기는 격동이 줄달았고 변화하고 발전했다. 그러나 정치는 제자리걸음이다.
4·19는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상징한다. 모두들 그 이후시대는 민주질서의 성장으로 이행될것을 기대했다. 그랬지만 민주화는 이땅의 질서로 자라가지 못했다.
자유당 정부의 퇴진이 곧바로 민주화라는 등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뭏든 자유당정부는 4·19라는 큰여울의 한복판에서 조명되었다. 이제는 먼 과거로 재조명해볼 필요가 있다.
본사는 그때를 되돌아볼 귀중한 자료를 갖고있다. 그 하나는 자유당정부 후기 몇 년의 국무회의 메모고 다른 하나는 자유당간부였던 장경근의 일기다.
장경근씨는 자유당 강경파로 불렸으며 4·19후 일본으로 밀항한 정치망명 1호다. 일본동경제대 법문학부 출신, 고문에 통과해 법조계에 몸담았다.
정부수립후엔 내무차관으로 전신했고 54년 자유당 소속으로 3대국회에 진출했으며 57년엔 내무장관을 겸직했다.
3·15선거당시엔 자유당정책위원회 위원장이면서 선거를 주관하던 자유당 정·부통령선거 대책본부 기획위원회 멤버였다.
때문에 4·19후 부정선거 책임자가 검거될때 그는 구속 1번 그룹에 포함되었다. 그는 1심에서 유죄선고를 받았다. 그는 지병인 당뇨병이 악화되어 병보석되었다. 그러던중 부정선거 책임자들에 대한 1심판결을 항의하는 세론에 밀려 처벌을 강화하기위한 특별법이 논의되던때 그는 병원을 탈출했다. 그는 특별법 논의는 병이 깊었던 그에게는 죽음의 예고였기때문에 탈출했다고 그의 일기에 쓰고있다.
그의 망명은 세론을 들끓게 했다. 정부는 일본정부에 그의 송환을 요구해 국교가 없던 한일간에 까다로운 정치문제를 만들어냈다.
그는 망명으로 옥살이는 면했지만 선거부정의 원흉- 아마도 최인규내무장관에 버금가는 부정선거의 책임자로 낙인찍혔다. 그가 없는 가운데 그에겐 많은 일들, 이를테면 「진보당 사건」 「보안법 파동」등 자유당의 정치적 무리를 기획했거나 추진한 장본인으로 규정되었다. 그는 이 모든 일들에 대한 해명의 기회를 갖지 못한채 갔다. 그의 일기는 그가 밝히고 싶었던 대목들을 증언한다.
정당인이기보다 법조인의 면모가 더 뚜렷했던 그답게 일기는 그가 펼쳤던 정치의 숨은 얘기까지를 꼼꼼하게 담고 있다. 대학노트 2권에 빽빽하게 쓴 그의 일기는 지금껏 부인이 보관했다. 공개하기위해 쓴 일기가 아니어서 주저했지만 이젠 진실을 이해할수 있을듯해 내놓기로 했다고 부인은 말했다. 그의 일기는 권력일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되돌아 볼 자료들을 담고 있다. 그의 일기중의 중요대목들을 통해 자유당의 한시대를 조명해 본다.

<59년11월16일>
흰 빛깔의 통통선이 희미하게 보인다. 행마선의 사공이 우리를 태울 밀항선이라고 말해준다. 그랬는데 그배는 다른쪽을 향해가고 있다. 절망이다 그랬는데 얼마뒤 그 배가 멎고 무엇인가 움직임이 나타난다. 아마도 다른 밀항자들을 태우는 모양이다. 우리만의 밀항선 이라야 하는데 약속위반이다. 그렇지만 어쩌랴. 이윽고 우리를향해 온다. 선원들의 재촉에 쫓기며 더듬어 올라갔다.
두려움과 추위, 분노와 불안속에 떨었던 해골섬에서의 오랜 기다림은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그랬지만 그 뒤끝도 처참하기만 하다… 밀항선에 오르기가 무섭게 선원은 뱃전의 뚜껑을 열고 구멍에 들어가라고 한다. 머리를 들면 뚜껑이 들어올려지니 누워있어야 한다. 생선 싣는 운반선 같은데 구멍들은 생선을 보관하는 곳인듯 했다. 생선냄새와 지린내로 견딜수 없다. 얼마안가 양말, 바지순으로 젖어온다. 몸을 꼼짝달싹 할수없다. 선원은 머리를 들지말것이며 명령은 절대 복종해야 한다고 말한다. 잔뜩 주늑든 우리들이니 그런 엄포가 없어도 우린 명령에 고분고분할수밖에 없는데… 우리는 선원들의 포로가 되고 약탈대상이 되었다.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다 사고가 마비된것같다. 통통선의 엔진소리를 들을수 있는것이 내가 아직은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준다.
이것은 장경근씨가 망명하던날 밀항선의 25시를쓴 일기속의 한 토막이다.
자유당권력의 실력자에서 한달음에 도망자로 곤두박질한 이 어이없는 전락은 3·15선거탓이다.
59년의 3·15정부통령선거에선 집권세력이 행사할수 있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했다고 일컬어졌다. 4할 사전투표, 3인조·9인조에 의한 공개투표 그런것들이다. 아뭏든 자유당 후보자의 득표수가 너무많아 개표에선 도리어 줄여 발표한 곳도 있었다는 무모한 부정선거였다.
그런 공개적이고 공공연한 부정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선거부정을 감행한 주역은 소수의 행정조직이다. 그들의 계획은 사전에 폭로되었다. 그런데도 야당인 민주당도 유권자도 손을 쓰지못한채 부정의 각본은 단한치의 차질도 없이 전국적으로 행해질수 있었던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장경근씨의 일기는 이 대목을 기록하고 있다.

<60년3월3일>
오늘아침 신문에 내무부의 부정선거 지령문을 폭로한 기사가 실렸다. 며칠전 부천군의 자유당 김장식동지등이 내게 왔던 일이 생각났다. 그들은 내게 『부평경찰서에서 완장을 비밀리에 제작하고 3인조·9인조 투표의 훈련, 기권권유등을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는 기색이 엿보인다. 풍설로 듣고있는 부정선거를 부천군에서도 저지르게 되면 장의원의 명예에 오점을 남긴다. 그뿐아니라 2년후의 국회의원 선거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선처해 달라』라고 충고했었다. 나는 몹시 당혹했다. 자유당 기획위원들 사이에서도 각자의 선거구에 부정선거 기맥이 엿보인다고들 했는데 신문을 보고나니 놀랍기만 하다.
소위 비밀지령문의 내용은 기권 권유, 4할사전투표, 반공청년단의 활동, 투개표선거관리위원에 대한 공작, 완장착용과 3인조·9인조투표, 투표함 바꿔치기등 생각할수 있는 부정은 거의 모두 망라돼 있었다. 아마도 경찰내부에 민주당에 동조하는자가 있어 지령문을 민주당에 넘겨준것이 틀림없다.
이날 상오 당기획위원회는 최인규내무·이강학치안국장을 불러 신문에 폭로된 비밀지령문에 대해 따졌다. 기획위원들 대부분이 사전에 몰랐던 일인듯 했다.
『소위 비밀지령문은 부정선거를 전국에 걸쳐 공개적으로 감행하는 것으로 이승만대통령과 이기붕의장이 정·부통령에 당선된다해도 선거에 의해 당선되었다고 할수 없다. 두분을 위해서나 자유당을 위해서나 이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이같은 무모한 짓은 할수 없다.』
『설혹 이번은 부정이 통한다 치자. 그렇지만 2년후의 국회의원 선거때 국민의 반발을 자유당후보들이 받게될 것이다. 그렇게되면 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한 대통령·부통령이 무슨 일을 할수 있겠는가』
『기획위원인 우리들도 모르게 내무부에서 이런 어마어마한 계획을 꾸며 실천단계에 들어가 있다니 도대체 선거는 누가 하는 것인가. 내무부가 모든일을 다하고 자유당은 바지 저고리 노릇을 한다면 아예 자유당 정·부통령선거대책위원회와 기획위원회를 모두 없애버릴것을 이기붕의장에게 가서 담판하자.』
나 뿐아니라 이재학·정존수·박만원·조순등 여러 기획위원들이 부정선거 지령문을 몰아쳤다. 특히 몇분들은 2년후의 자신의 국회의원선거를 망치게 된다는것 때문에 더욱 흥분한듯 했다.
최내무는 신문보도는 과장된것이며 거짓말이라고 했다. 한희석선거대책위원장도 이 문제를 자기와 최내무에게 맡겨주면 적절히 시정하겠다고 다짐했다. 결국 회의는 부정선거 지령문은 사실이 아니다. 다만 3인조·9인조의 경우는 자유당의 최하부세포조직이 9인조인데 운영상 세분할수 있는것이므로 3인조를 부정투표에 이용하지 않는이상 조직으로서 불법적인것은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려 이를 조순대변인의 성명으로 발표하도록 했다.
그러나 회의 뒤끝은 개운치 않았다. 회의에서 한희석위원장·박용익총무위원장·이존화조직위원장·이중재기획위부위원장등은 최내무의 부정선거 계획에 찬성은 하지 않았지만 내무부의 고충을 이해하는듯한 소극적 태도여서 이들중 몇사람은 비밀을 사전에 알지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까지의 기획위원회 운영은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선거운동은 기획위원회에서 논의 했지만 정략적인 것, 예를들어 경비지출등은 비밀을 요한다는 구실로 당에서는 한희석위원장에게 일임했다.
한씨는 이중재 박용익 (의정) 이존화(조직)씨 하고만 상의한 뒤 이기붕의장의 승인을 받아 일처리를 했다. 때로는 수덕에서 경무대의 박찬일 비서와 밀회해 비밀스런 일을 논의·집행하는 듯 했다. 그뒤에 당쪽보다는 내무부가 자유당후보의 당선공작을 도맡아하는 느낌이었다. 이 모든 일은 한위원장이 전담해왔기 때문에 시정하겠다는 약속을 믿기가 어려웠다.
의심가는 점은 한둘이 아니었다. ①부통령 후보인 이기붕의장의 당선을 쉽게 확보하는 방법으로 당의 확대간부회의가 건의한 통일티키트제 개헌안이 상부에서 채택되지 않은것 ②최내무가 주장한 조기선거가 이기붕씨 당선확보의 방법으로 채택된 사실 ③지난해 3월 최내무가 공무원은 대통령 선거운동을 해야한다고 공언하고 공무원 친목회를 만드는등의 무모한 일처리 ④나외에 몇 당간부가 지난해말 내각개편때 최내무를 바꾸도록 건의했을때 처음엔 이기붕 의장도 동의했으나 얼마후 뜻을 바꾸고 박찬일 비서만이 진해로 가 최내무는 바꾸지 않는다는 이대통령의 담화를 발표하게한 배후에는 박마리아여사·박찬일비서·한희석씨등의 공작이 있었다는등 지난일이 생각났다. 이 모든것들은 내무부를 선거추진의 주역으로 하여 그릇된 충성심을 가진 몇사람의 실권자가 선거공작을 주관하고 있고 이기붕의장도 본의아니면서 이들에게 끌려가는듯 했다.
이의장은 본의는 아니면서도 무리하고 무모한 쪽으로 이끌리고 있는것을 느껴왔는데 오늘 아침신문을 보고 이것이 환각의 세계가 아니고 현실의 세계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좋거나 싫거나 이러한 격랑에 휩쓸려가지 않을까 걱정된다. <다음회부터는 7면에>

<소설 「활빈도」 오늘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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