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 총재경선서 돌풍 일으킨 김재광 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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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선거결과에 깨끗이 승복할 것을 대의원 여러분 앞에 서약합니다. 민주주의의 원칙은 자유경선에 있으며 그 극치는 결과에 승복하는 것입니다.』
신민당 임시전당 대회에서 두 김씨의 지원을 받은 이민우 총재에게 도전, 이 총재의 압승예상을 뒤엎고 43%의 득표율을 나타내 돌풍을 일으킨 서강 김재광의원.
비록 패자였지만 「깨끗한 승복자세」를 보여준 그의 낙선인사는 대의원들의 우뢰같은 박수와 함성속에 대회의 절정을 이뤘다.
-전당대회 결과에 만족하십니까.
『두 김씨의 간섭으로부터 당의 자립과 자유경선을 통한 당내민주주의 전통확립을 위해 출마했던 것입니다. 두 김씨에게 「착각」을 깨닫게 해주고 당내민주주의 싹을 틔운 점에서 나는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부총재 균배합의를 깬 주류측의 「위약」과 사퇴를 공언하고 쉽게 번복한 부총재들의 행동이 끝내 마음에 걸리는군요. 정치인의 제1생명은 신의입니다. 신의를 저버린 이들의 행동을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앞으로 43%의 대변자로서 어떠한 역할을 해 나가실지…
『43%에 대한 당직 배분등 대가를 요구할 생각은 없습니다. 당 운영에도 전혀 간섭을 하지 않겠어요. 대의원들이 뽑아준 「진짜 총재」가 독자적으로 책임 있는 당 운영을 해나가기를 기대합니다. 비주류연합도 계속할 생각이 없습니다. 앞으로 당 운영이 잘못되면 그때 나서겠습니다.』
-총재경선과정의 당외 분위기가…
『김대중씨 가택보호조치가 결과적으로 나에게 크게 불리하게 작용했습니다. 내가 총재되는 것을 원치 않은 정부측의 고등술책이었죠. 선거자금은 모두 1억원쯤 들었는데 측근 의원들이 6천만원쯤 각출했고 내가 4천여만원 마련했어요. 선거막바지에 내가 5.17이후 투쟁휴식기를 가졌다는 흑색선전도 나돌았는데 5.17때 나야말로 정계은퇴협박에도 불구, 끝까지 은퇴성명을 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두 차례 사경을 헤맬 정도의 수술로 활동은 하지 못했습니다만…』
-건강유지는.
『소식입니다. 아침식사는 안해요. 젊은 시절엔 연식정구전국대회우승을 비롯, 축구·배구등 운동은 만능이었죠. 요즘은 줄였지만 당구도 5백점까지 쳤습니다.』
해방 후 이승만 박사휘하에서 대한촉성국민회 청년부장을 맡으면서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 당시 고 김두한 의원 등 「주먹」들과도 관계를 맺으면서 우익투쟁을 했는데 「히까리」(광)란 별명은 이때 얻었다는 설명이다.
서울시의원을 두 번 역임한 뒤 6대 때부터 국회에 진출, 정치피규제자로 있던 11대 때를 제외하곤 서울 서대문-은평구에서 내리 6선의 관록을 쌓았다.
신민당 원내총무와 사무총장·최고위원을 역임했다. <허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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