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과 접대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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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기업의 연구개발투자는 산업별, 업종별 또는 규모별 격차를 고려하지 않은 채 일률적으로 논의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 그러나 연간 매출액 3억원 이상의 1천 3백 여개 제조업체들이 지난 한해동안 연구개발비로 매출의 0.1%를 지출했다는 한국은행의 조사는 우리기업의 현 좌표를 보여주는 자료처럼 보여 듣기에 민망하다.
정부의 기술관련통계에 따르면 지난해의 과학기술투자는 GNP의 1.4%에 달했고 제조업분야의 기술개발투자도 매출의 0.8%에 달한 것으로 집계되어 있다. 우리는 이 같은 통계자료의 격차가 의외로 크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한편 이 같은 자료의 격차가 단순한 통계기준의 차이뿐만 아니라 기술개발, 또는 연구개발에 관련된 개념의 정립이나 일반의 인식이 여전히 초보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반증하는 자료로 보고싶다.
물론 현재의 산업구조나 기업경영환경에서 선진공업국들처럼 안정된 연구개발투자가 손쉽게 늘어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불황과 자금난이 교차적으로 경영을 위협하는 기업여건도 그렇고 한편에는 독과점, 또 한편에는 과당경쟁이 혼재하는 파행적 시장구조도 안정된 연구개발투자를 어렵게 만드는 주요인들이다.
그러나 다른 일면에서는 80년대 이후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는 산업의 효율이나 생산성의 둔화를 막으려면 획기적인 기술혁신과 생산성구조의 재구성이 불가피하고 이는 다름 아닌 연구개발투자로서만 그 기틀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더우기 보호와 장벽이 두터워지는 대외통상 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데는 기술혁신, 새로운 기술도입, 새 공정의 개발이 오히려 시급한 실정이다.
정부도 5차계획부터 연구 개발투자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공공 또는 민간의 연구투자 환경을 개선하려는 여러가지 시도를 추진중이다.
경영혁신에 언제나 적극적인 대기업들의 상당수는 괄목할만한 연구개발비를 투자했고 선진기술도입에도 열의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정도조차 아직은 초보단계에 불과하다. 기술개발과 연구투자에 대한 조세나 자금지원은 아직도 불충분할뿐만 아니라 연구개발을 저해하는 각종 장애요인도 여전히 많다. 각 급의 기술연구인력의 교육과 공급에도 많은 문제가 해결돼야하나 그보다는 우선 불필요한 기업외 비용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만이라도 연구투자확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기부접대비나 각종 성금 등 가외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은 이미 주지된 대로이나 이번 한은의 조사에서도 연구개발비의 11배에 달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런 기업환경이 개선되어 경영 불합리 요소들이 줄어들고 적절한 조세·금융상의 촉진책이 조성된다면 민간의 연구개발은 스스로의 필요성 때문에라도 크게 늘어날 것이다.
이와 함께 특히 기술혁신의 긴요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중소기업의 기술개발투자가 우선적으로 지원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편 연구개발에 못지 않게 중요한 기술정책으로는 선진기술도입에도 보다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기술개발의 효율화와도 관련된 문제다.
첨단 기술국을 자처하는 일본의 경우만 해도 기술수입만은 여전히 문호를 활짝 열어놓고 선진국, 특히 미국의 첨단기술을 활발하게 도입하고 있다.
지난 84년의 경우 일본이 외국에 지불한 특허권사용료(기술수입)는 무려 23억 1천 4백만달러에 달한다. 전년비 11.1%의 증가다.
이 비율은 일본의 기술수출 증가비와 일치한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는 결코 아니며 일본이 특히 기술을 보호하고 개발하는 일에 얼마나 에고이스트인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미국과 일본은 흔히 표면에 나타나기로는 「기술마찰」이라도 있는 것 같지만 미국은 그 문제에 있어선 아직도 일본의 빅 브러더이다. 일본은 컴퓨터분야·소프트웨어등의 기술도입에서 미국 의존율이 68.4%로 전년도인 83년보다 5%나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기술」개도국인 우리나라에도 시준하는 바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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