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단상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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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11면

며칠 전 여느 때처럼 화장실에 앉아서 읽은 신문에 내가 좋아하는 칼럼니스트 Y씨의 글이실려 있었는데, 그 가운데서 다음을 인용한다 .『원래 관청의 장자리라는 것은 영광을 누리기만 하라는 자리가 아니라, 여차하면 책임을 지고 물러나거나 잘리라는 자리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우리의 공직사회에서는…쇠섭줄 같은 배짱으로 끈질기게 눌어붙는 것이 「소신파」라는듯 보일 때가 많다. 도대체가 무엇이 잘못되어도 통 목잘리는 일이 별로 없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닌 듯하다. 왜냐하면 나는 같은 신문 바로 그다음 호에서 서울대학교 총장의 「전격적인 경질」소식과, 그 사설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읽었기 (여전히 측간에서)때문이다. 『22일 서울대총장이 전격적으로 경질되었다. 지난 79년5월 제13대 윤천주총장이 4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이래, 세분이 도중하차하여 이제 17대총장을 맞게됐다. 그때 그때의 경질 이유가 무엇이든간에, 대학이 정치나 사회상황에 물든것 같은 잦은 인사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같은 지면에 실린 전 총장의 인터뷰 기사에 그의 재임기간이 l년9개월이라고 밝혀져 있는데, 4년 임기의 반을 못채웠으니 그야말로 「전격적인」도중하차인 셈이다.
그러니 Y씨가 말한「소신파」의 「쇠심줄 같은 배짱」은 여기에서는 정녕 거리가 멀다. 그런「소신파」들과 임기를 못채우고 연속으로 바뀐 세분 서울대 총장을 비교하면, 형평의 견지에서 이들 세분이 억울하다는 느낌이든다. 하물며 그 문책의 이유가 대체적으로 교육적인 것이 아니라, 위에 인용된 사설의 표현처럼 「대학이 정치나 사회상황에 물든것 같은」 인상을 갖게하는 그런 이유임에랴!….
그 사설에서 다른 인용을 하나 더 하면서, 또 인용만으로 이글을 쓴 내 비겁함에 대해 독자들의 용서를 구하며 글을 끝내기로 하자. 『적어도 총장이 임기내에서는 문교당국이나 학생의눈치 살핌 없이 소신껏 지성과 순리를 펴나갈수 있도록 지켜볼만한 여유를 갖는 것이 더 소중할듯 싶다』
곽광수 <서울대·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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