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11건 침해”…삼성전자 걸고 넘어진 화웨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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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중국 전자회사 화웨이가 삼성전자를 상대로 미국과 중국 법원에 특허침해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고 25일 밝혔다. 화웨이는 이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캘리포니아북부 연방지방법원과 중국 선전 중급법원에 낸 소장에서 삼성전자가 화웨이의 4세대 이동통신 업계 표준과 관련된 특허 11건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중국 정보기술(IT) 대기업이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침해 소송을 낸 것은 처음이다.

손배소 낸 뒤 “함께 협력하자”
상호 협상 고지 선점작전인 듯

화웨이는 특허 공룡이다. 세계 지적재산권기구(WIPO)에 따르면 화웨이가 지난해 신청한 특허는 3898건. 미국의 퀄컴(2442건)이나 삼성전자(1683건)를 제친 독보적 1위다. 지난해 이 회사가 쓴 연구개발(R&D)비는 92억 달러(약 11조원)로 매출(608억 달러, 72조원)의 15%가 넘는다. 소송을 통해 화웨이가 노리는 건 현금 배상이 아닌 삼성전자의 특허 기술이다. 상호 특허협력(크로스라이선스·cross license)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로 화웨이의 지적재산권 담당인 딩지안싱 사장은 소송 직후 성명을 내고 “우리는 스마트폰 산업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많은 기업과 크로스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해왔다”며 “삼성도 화웨이로부터 라이선스를 받고 함께 협력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싸움을 걸자마자 화해의 손을 내미는 모양새다.

화웨이는 애플·에릭슨·퀄컴·노키아 등과 크로스라이선스 계약을 맺었지만, 삼성전자와는 지금껏 계약을 맺지 못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화웨이와 크로스라이선스 관련 논의를 벌인 적이 있으나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던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 3위인 화웨이가 미국 시장에 자사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노이즈 마케팅을 펼치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한 전자업계 관계자는 “세계 1위 스마트폰 제조사인 삼성과 특허 분쟁을 벌인다는 소식은 글로벌 시장에서 화웨이의 위상을 올려주는 것”이라며 “화웨이가 굳이 미국 법원에 소송을 낸 것도 미국 시장 스마트폰 점유율이 미미하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그동안 중저가 스마트폰으로 중국 시장을 공략해 온 화웨이는 최근 카메라 회사 ‘라이카’와 손잡고 만든 중고가 스마트폰 P9을 앞세워 선진국 점유율을 높이려 애쓰고 있다.

삼성전자는 적극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안승호 삼성전자 지식재산권센터장(부사장)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에서 기자들을 만나 “맞소송이라도 해야겠다. 그쪽(화웨이)에서 그렇게 나오면 가만히 있을 순 없다”고 말했다.

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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