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산업화와 함께 등장|「민중문화」의 뿌리와 성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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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민중문화의 각 부문, 문학·미술·연극·연희등이 본격적으로 태동한 것은 70년대다.
60년대 중반에 우리 문화의 뿌리를 찾겠다는 움직임이 대학의 탈춤연구등에서 시작되어 외국의 생경한 예술형태를 그대로 이식하는것을 거부하면서 우리의 문화양식을 찾자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그것이 민중문화형식의 기폭이 되었다.
70년대에 들어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근로자·농민들의 소외현상을 다루어야 한다는 의식이 생겨났고 이미 태동되었던 전통적 문화양식과 결합되면서 민중문화라는 말이 널리 쓰이게 됐다.
민중문화는 내용으로서는 인간의 내면적인 문제에 대한 추구보다는 삶의현장, 특히 소외된 다수의 삶의 모습을 그려내야 한다는 순수보다는 참여의 모습을 띄고 발전해 왔다. <문학>
70년대의 산업화로 인해 근로자·도시빈민·농민의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문학이 이러한 민중의 현장에서 분리될수 없다는 의식이 생겨났다.
70년대에 나온 황석영씨의 『객지』는 처음으로 근로자의 문제를 다루었다. 그후 근로자의 문제, 농촌의 해체문제등이 많은 소설가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으며 시에서도 이러한 문제들이 다루어졌다.
평론쪽에서도 민족문학의 논의가 발전되면서 민족문학에 대한 분석·전망이 활발해졌다.

<민중미술>
80년11월 「현실과 발언」그룹전을 그 효시로 친다. 젊은 미술가와 평론가들이 주축이 된 이들은 동인그룹을 형성하면서 『기존미술이 고답적 관념의 유희에 사로잡혀 진정한 자기와 이웃의 현실을 소외시켜 왔다』고 선언했다.
이들의 화풍은 강렬하다못해 보는 이로 하여금 공포와 전율에 떨게하는 것이다. 더러는 이웃에서 본 할머니·할아버지·아저씨들의 평화스런 모습이 나오기도 하나 의미를 강조하는 작품에선 이 같은 선정성이 강하게 표출된다.
이들의 활동을 계기로 「두렁」등 몇몇 동인그룹이 속출했으나 그것이 일반 대중의 호응을 얻고 있느냐에 대해선 아직도 회의적이다.

<연회·연극>
70년대의 탈춤·마당극은 전통문화에 대한 주체의식과 함께 현실비판이 두드러졌다. 마당극이라는 형식은 그 풍자성과 현장성 때문에 쉽게 퍼져나갈수 있었다.
대학을 중심으로 했던 탈춤·마당극은 차츰 노동현장·농촌현장에 확대되었다.
전문인들로서는 현장에서 그들 근로자·농민들이 갖는 토속적·현장적인 정서를 전할수 있고 현장에서는 전문적인 연희자들로부터 구성등에 대한 지도를 받았다.
최근에 나타난 연희형태는 『대동놀이』 참석한 모든 사람이 함께 참여하는 「대동굿」 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연극에서는 연우무대가 공해풍자극 『나의 살던 고향은』, 연희광대패의 『밥』등의 작품이 나왔다. 현실의 문제를 연극으로 표현한다는 것.
민중문화운동의 이론적 배경을 규명한 사람의 하나로 꼽히는 평론가 채광석씨(37)는 지금 우리 문화의 성격을 지배문화와 민중문화로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민중문화는 민중·민족운동을 물질적 토대로하여 성립한것이며 그뿌리는 4·19혁명이라고 말한다.
민중문화의 성격을 사회적제세력의 자율적이고 민족적인 자기전개에 의해 이뤄지는 문화며 민중·민족의 통합운동이라고 주장한다.
20일 경주에서 있은 예총대표자회의에서는 『민중문화가 왜곡 인식돼 왔으며 이를 예술의 본령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결의했다.
따라서 기타 연예인들이 보는 민중문화의 개념은 기존 민중문화그룹이 보는 견해와는 또 다를 수도 있다.
본령의 예술은 과연 무엇인지, 민중문학·민중미술이 진정한 예술인지, 그리고 진정한 예술이기 위해서 문학·미술·연극등은 어떤 모양과 조건을 갖추어야하는 것인지 앞으로 활발한 논쟁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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