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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총리안 타협 이끈 신익희처럼…‘통법부’수장 아닌 ‘중재자’가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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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뉴스 속으로 역대 국회의장으로 본 바람직한 의장론


(국내) 정치는 바닷가에선 멈춰야 한다(Politics stops at the water’s 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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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인 아서 반덴버그(공화당)가 해리 트루먼 대통령(민주당)의 대외정책에 대한 초당적 지지를 선언하면서 했던 유명한 말이다. 반덴버그는 그해 10월 상원 연설에서 “미 공화당의 전통적 고립주의 당론을 국제주의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힌 뒤 전후 미국 외교정책의 근간을 담은 ‘트루먼 독트린’(소련 봉쇄 정책)과 ‘마셜 플랜’(서유럽부흥계획),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설립에 협력했다.

77~87년 미국 최장수 하원의장이었던 토머스 오닐(민주당)은 로널드 레이건(공화당) 대통령에 맞서 군비 증강과 기업 감세 등 ‘레이거노믹스’를 “부자를 위한 크리스마스 파티”라고 비판하며 사사건건 충돌했다.

그러나 대통령과 야당 하원의장은 ‘오후 6시 퇴근 후엔 친구’였다. 같은 아일랜드 이민자로 저녁 때마다 만나 비공식으로 막힌 정국을 풀었다. 오닐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소련군에 맞선 이슬람 반군을 지원하는 레이건 독트린을 암묵적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서정건(미국정치 전공) 경희대 교수는 “미국이 200년 넘게 대결과 파국으로 치닫지 않고 대통령제와 양당제를 유지한 건 정당 지도자들이 중재자 역할을 하며 초당적 협력 전통을 만들었기 때문”이라며 “특히 대외정책은 민주·공화 양당 모두 ‘정쟁보다 국익’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5월 30일 개원하는 20대 국회의 국회의장은 통법부(通法府) 수장이 아니라 미국의 초당파 의회 지도자를 일컫는 ‘위대한 중재자(Great mediator)’가 돼야 한다는 제안이 많다. 서울대 박원호 교수는 “3당체제가 돼 날치기 처리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역사의 유물이 됐다”며 “이제 국회의장이 여야 중재자로서 능력을 제대로 발휘해야 20대 국회가 일하는 국회, 생산적 국회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3공화국 시절 이효상·백두진
3선 개헌, 특별조치법 강행 처리

우리나라도 사실 건국 초기만 해도 대통령 선출권(간선제)을 가질 만큼 국회의 권한이 막강했다. 국회의장도 재적 3분의 2 이상 의원이 출석해 뽑을 만큼 정당의 대표가 아니라 의회의 대표자가 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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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익희 국회의장(제헌~2대)이 50년 6월 2대 국회 개원사에서 “정부는 민주주의적인 논의 끝에 결정한 국회의 의사를 절대적으로 존중할 것이며 정부와 국민은 국회를 매개로 유리되지 않고 굳은 연계를 지어 나갈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국회의 위상이 높았다. 신 의장은 제헌국회 때인 48년 7월 이승만 대통령의 이윤영 초대 국무총리 임명안이 부결되자 정부 수립을 위해 이범석 초대 총리로 타협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내각제 개헌을 추진하던 의원 10여 명을 구금한 끝에 같은 해 7월 자신의 직선제 개헌안을 통과시키고 2대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후 권력의 추는 대통령 쪽으로 급속히 기울었다. 동시에 3대 총선에서 여당인 자유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해 제헌의회 이후 6년 만에 여대야소(與大野小) 국회로 바뀌면서 국회의장은 정부(대통령)의 대리인(‘낙하산 의장’)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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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의 비서 출신인 이기붕 국회의장(3~4대)을 내세웠고 박정희 대통령이 대구사범학교 스승이던 이효상 국회의장(6~7대)을 지명한 게 ‘낙하산 의장’의 출발이었다. 이효상 의장은 60년 7월 5대 총선에서 상원격인 참의원(경북2부)에 당선됐으나 5·16으로 의원직을 9개월 만에 마쳤고, 63년 6대 총선에서 공화당(대구 남)으로 당선돼 사실상 지역구 초선 국회의장이란 기록을 남겼다.

뒤이은 정일권 9대 국회의장은 전국구 의원 출신이고, 백두진 의장(8대, 10대)은 대통령 지명직인 유정회 의원 출신 첫 국회의장이었다. 이 시기 의장은 이승만 대통령의 3선 연임(1954년 사사오입 개헌),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1969년), 박 대통령에게 비상대권을 부여해 유신 선포를 가능하게 만든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1971년) 날치기 통과 등을 주도했다.

‘국회=통법부(通法部·행정부가 요청한 법률을 통과시켜 주는 부처)’란 비아냥을 들었던 이유다. 이효상 의장은 69년 8월 박 대통령 3선 개헌안에 대해 야당 의원들이 “개헌안에 찬성하며 의장으로서 불편부당한 입장을 지키지 않았다”고 따지자 “대단히 아픈 곳을 찔렀다. 당을 따르자니 국회의장을 내놓아야겠고, 의장 일을 잘 보자니 당을 버려야 하는 진퇴유곡에 빠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 김재순, 지방자치법 등 합의 통과
이만섭, 국회법 개정안 날치기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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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이 중재자 역할을 다소나마 회복한 것은 민주화 이후 88년 4당체제 여소야대 13대 국회였다. 최근 작고한 김재순 국회의장이 개원사에서 ‘정치의 황금분할’이란 말을 남겼다. “정당별 의석 분포가 두려움을 느낄 만큼 신비스럽다. 과반수를 차지하는 다수당이 없는 가운데 4당 병립의 새로운 정치 판도가 등장했다. 정권이 독선과 아집을 버리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고, 대화와 타협을 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면서다. 당시 지방자치법 통과, 5공 청문회 도입 합의를 이끈 것도 이때다.

고(故) 이만섭 국회의장(14대, 16대)도 두 차례 의장직을 모두 여소야대 상황에서 맡았다. 그는 2000년 두 번째 의장 취임사에서 “국회는 여당의 국회도, 야당의 국회도 아닌 바로 국민의 국회다. 나는 의사봉을 칠 때 한 번은 여당을 보고, 한 번은 야당을 보며, 또 마지막 한 번은 국민을 바라보고 ‘양심의 의사봉’을 칠 것”이라고 연설했다.

이 의장은 실제 당시 공동정부인 자민련을 교섭단체로 만들기 위한 교섭단체 요건을 10석으로 낮추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의 날치기 처리를 거부했다. 법안도 무산됐다. 국회의장을 정당의 대표가 아닌 국회 대표자로 복권하기 위해 선출된 뒤 당적 보유를 금지하는 국회법을 개정한 것도 이만섭 의장 때였다.

경희대 김민전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영국처럼 의회의 관리자로서 중립적 의장의 외양은 갖췄지만 이후 취임한 국회의장들도 직권상정을 하느냐, 마느냐란 십자가를 짊어져야 했다”며 “결국 대통령과 여당이 국회의장의 독립성과 중재자 역할을 존중하느냐가 의장의 성공 요건”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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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기 “20대 국회 대화·타협 기대”
박관용 “대선 경쟁으로 협치 힘들 듯”

김원기 전 국회의장(17대)은 이와 관련해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일화를 소개했다. “내 경우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의 모든 인사권을 포함해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해 줬다. 내게 딱 한 번 법안 통과(직권상정)를 요청하는 전화를 했지만 ‘대통령이 아랫사람들한테 보고를 잘못 받은 것 같다. 당도, 정부도 좋을 것이 없다’고 하니 ‘의장님이 한 번도 잘못 판단하신 적이 없으니 알아서 하세요’라고 하더라. 그 이후 한 번도 나한테 요구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2004년 여당인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국가보안법 폐지·개정안의 직권상정 처리를 요구하며 의장실 점거농성까지 벌였지만 거부했다. 김 전 의장은 “20대 국회 역시 구성 환경 자체가 3당 분할로, 대통령의 권력으로 좌지우지하지 못하게 돼 있기 때문에 대화와 타협, 선진의회로 거듭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에 박관용 전 의장(16대)은 “대선을 앞두고 있어 3당이 선명성과 인기영합 경쟁으로 치달을 경우 협치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며 “20대 전반기 국회의장뿐 아니라 3당 지도자가 모두 타협의 정치를 복원하지 않으면 국회가 완전히 국민에게 버림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고 공개·비공개 대화 채널을 동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S BOX] 국회의장, 의전서열 2위에 3급 이상 고위직 124명 인사권

정의화 국회의장은 20일 ‘365일 청문회법’(국회법 개정안) 처리와 관련, “특별한 하자가 없는 법사위 통과 법안에 대해 본회의 (표결) 일정을 잡는 것은 전적으로 의장의 권한이며 직권상정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 법안은 전날 여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회 본회의에서 상정·처리됐다. 정 의장의 이런 발언은 국회의장의 의사지휘권을 강조한 것이다. 국회선진화법 시행으로 의장의 직권상정권한은 국가비상사태에 준하는 상황으로 축소됐다. 하지만 여전히 강력한 본회의 운영권을 갖고 있다. 이외에도 국회의장은 다양한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 국회 질서유지를 위해 회의장이나 청사 퇴거명령권, 의원가택권 등을 행사한다. 의장은 국회 사무처 등 소속기관 운영의 최종 결재권자이기도 하다. 대외적으론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를 대표한다. 공식적인 국가 의전서열은 국가원수인 대통령 다음인 2위다.

20대 국회 전반기 의장 자리를 놓고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선 5파전(문희상·정세균·박병석·이석현·원혜영)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명예’ 때문만은 아니다. 국회의장이 운용하는 예산과 인력 규모도 막대하다. 국회의장이 관장하는 올해 예산은 5560억원이다. 국회직 공무원은 사무처 직원(1800명), 의원실 보좌진(2700명) 등 약 4500명에 달한다. 이들 중 국회의장은 3급 이상 고위직 124명에 대해선 직접 인사권을 행사한다. 우선 장관급인 국회 사무총장의 경우 본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할 수 있다. 차관급 산하기관장은 입법조사처장·예산정책처장·국회도서관장 등 6명이다. 3명의 수석비서관과 여야 정당에서 파견한 정책연구위원(1급)을 포함해 1급 이상 고위 공직자 수만 38명이나 된다. 4급 이하 국회 공무원은 사무총장이 인사권을 갖고 의원 보좌진은 개별 의원이 뽑는다.

정효식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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