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의 「단독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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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여야간에 협상기미가 보이는 듯 하더니 제126회 임시국회는 끝내 신민당에 의해 독단으로 소집되고 말았다.
임시국회 소집을 야당단독으로 요구할 수 있게 된 것은 12대국회의 새로운 면모이기는 하지만 민정당이 반대의 입장을 굽히지않고 있어 현재로서는 정상운영을 기대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국회를 소집해보았자 의사일정조차 마련치 못하고 유회를 거듭할 것을 뻔히 예견하면서 야당이 단독소집을 강행한데는 그만한 사정이 있을 것이다.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어쩔 수 없이 편 고육책일수도 있고 민정당측 주장대로 당리당략적에도 이유가 있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지난번 개원국회에서 야당측 정치공세를 경험한 뒤끝이라 민정당으로서는 신민당의 당내문제가 엉뚱한 방향으로 비화되는 것이 부담도 되고 정가의 관심거리로 등장한 이른바 「역할분담론」도 지켜볼만한 호재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여야의 이런 줄다리기는 의회정치의 상식을 벗어나는 일로 비칠 뿐이다.
야당이 공전을 뻔히 알면서 국회를 단독소집한 것도 그렇지만 기회있을 때마다 장내정치를 고창해온 집권당이 구실이야 어떻든 국회를 일방적으로 기피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국정주도의 책무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게하고 있다.
지난번 국회의 폐회무렵 여야는 다같이 「민생국회」의 필요성에 입을 모았다. 그것은 「정치」에 열중한 나머지 「민생」에 소홀했다는 반성에서였다.
조세감면규제법개정안과 추가갱정예산안, 군인사법 개정 등의 처리뿐 아니라 수출부진 타개책, 부보기업 정리문제 등 국회가 다루어야할 안건은 산적해 있다. 사실 민정당은 그런 안건처리를 위해 국회개회를 바라는 입장이었다. 야당이 제기하려는 학원 노사만해도 어떤 형식이건 정치권의 여과를 거치지 않으면 안될 문제들이다.
국회의 회기가 여유가 있다면 또 모르지만 이번 임시회로 30일을 쓰고나면 국회는 정기회 90일만이 남는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만해도 벅찬 9월 국회에서 미루어온 모든 안건을 다루라는 것은 도시 무리일 수 밖에 없다.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주요안건이 시간에 쫓겨 무더기, 졸속 처리된다면 그건 국회의원들이 성실히 자기책무를 수행치 않은 결과라고 할 수밖에 없다.
기왕 단독소집을 강행한 신민당이 새삼 철회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이제와서 민정당이 국회에 참여하는 것 역시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국회의 정상운영에 대해 희망을 걸고자한다. 여야가 정치력을 발휘, 타협할 여지가 있고 시간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야가 사전에 충분한 절충을 벌여 단독소집에까지 이르지 않았으면 더 바랄게 없겠지만 지금은 어느 쪽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문선의 대책을 세워야 할 때다. 국회가 몇몇 정당의 당략을 시험하는 무대가 아닌 이상 국회의 공전이 부를 국민의 지탄은 어느 쪽도 면할 수 없다.
야당의 단독소집과 여당의 보이코트로 세차례나 공전되고만 8대국회때의 꼴사나운 전철은 되풀이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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