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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부시 당선시킨 ‘선거판 제갈량’ 매너퍼트…트럼프 캠프 키 잡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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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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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반란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될 기세다. 공화당 주류의 견제는 여전하지만 트럼프의 세몰이가 거침없다. 폭스TV는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경선주자와 가상 대결에서 45% 대 42%로 앞섰다”고 18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런 트럼프의 행보를 놓고 워싱턴 정치전문 매체인 더힐(The Hill)은 “요즘 트럼프의 등장에서 앤드루 잭슨 전 대통령의 모습이 엿보인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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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은 미국 7대 대통령(1829~1837년)이다. 그는 당시 전국 정당인 민주공화당(현 민주·공화당 뿌리) 내 짬짜미 후보 선출 방식을 깨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정당 질서 기준으로 비주류란 점에서 트럼프와 잭슨은 비슷했다. 정치 철학에선 트럼프와 잭슨은 닮지 않았다. 잭슨은 당시 기준으로 민주적 지형을 넓힌 역사적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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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잭슨이 닦아 놓은 길을 트럼프가 밟을 가능성이 크다. 바로 공직에 자기 사람 심기(엽관제·Spoil System)다. 잭슨이 백악관에 들어선 1829년 거의 모든 공직은 기득권 세력이 장악했다. 잭슨은 연방정부 안에서 사실상 외톨이였다. 그는 공격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섰다. 고위 공직자 20%를 해임하고 자기 사람을 임명했다. 또 행정부를 지휘하기 위해 백악관 보좌관제를 도입했다. 이런 엽관제는 이후 여러 차례 비판과 개혁을 통해 수정됐다. 하지만 21세기 지금도 미국 정치 시스템의 중요 부분을 이루고 있다.

[똑똑한 금요일] 트럼프를 움직이는 참모들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전문가의 말을 빌려 “엽관제는 비주류 인물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강화되는 패턴”이라고 설명했다. 당선자가 주류와 다른 가치를 실행하기 위해선 자기 사람이 더 필요할 수밖에 없다. 미국 정계의 이단아인 트럼프는 특히 그럴 수밖에 없다. 트럼프 사단에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현 캠프 인물들이 트럼프가 백악관에 들어서면 문고리를 장악할 수 있다.

| 돈관리·인재영입·미디어전략 총괄
매너퍼트 합류 뒤 트럼프 막말 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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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힐은 “요즘 트럼프 캠프가 중대한 변화를 맞고 있다”고 전했다. 인재 영입이 본격화해서다. 대표적인 인물이 폴 매너퍼트다. 매거진 뉴욕은 “매너퍼트가 올 3월 트럼프 캠프를 넘겨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트럼프의 선거 예산 2000만 달러(약 240억원)를 쥐락펴락하고, 누구를 캠프에 영입할지 어떤 미디어 전략을 펼칠지를 결정한다.

정치판에서 한 인물이 뜨면 누군가는 밀려난다. 매너퍼트가 뜨면서 캠프 선대본부장인 코리 르완도스키가 밀려나고 있다. 르완도스키는 보수적인 싱크탱크 ‘번영을 위한 미국인들(Americans for Prosperity)’의 뉴햄프셔주 담당자 출신이다. 뉴욕지는 캠프 관계자의 말을 빌려 “내전이 진행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매너퍼트는 기존 참모들의 전략을 비판하면서 등장했다. 뉴욕지는 “매너퍼트 영입 이후 트럼프의 행태가 좀 정돈되고 있다”고 평했다. 트럼프가 내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줄었다는 얘기다.

매너퍼트는 선거판 고수다. 제럴드 포드, 로널드 레이건, 조지 W 부시의 선거 캠프에서 잔뼈가 굵었다. 친서방 시위 때문에 2014년 권좌에서 쫓겨난 우크라이나의 빅토르 야누코비치를 대통령에 당선시키기도 했다.

매너퍼트 등장으로 트럼프가 한결 예측 가능해졌지만 국제정치 분야에서는 여전히 ‘정체불명 혜성’으로 통한다. 민감한 북한 정책을 놓고 여전히 트럼프의 말은 오락가락한다. 이슬람에 대해선 인종주의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누가 국제정치를 조언하고 있기에 그럴까.

| 대외·국방 분야는 슈밋·켈로그
민간 전문가보다 펜타곤 출신 기용

트럼프는 최근 CNBC와 인터뷰에서 “난 나 자신과 대화한다. 머리가 아주 좋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워싱턴 정치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외정책 발언 배후엔 조셉 슈밋이 있다고 말했다.

슈밋은 전 펜타곤 감사총괄이었다. 부시 전 대통령이 2002년 감사총괄로 지명했다. 하지만 그는 2005년 연방수사국(FBI)의 펜타곤 조사를 방해한 혐의를 받아 자리에서 쫓겨났다. 그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는 공동 집필한 책 제목에서 엿볼 수 있다. 『이슬람 율법 샤리아:미국에 대한 위협(Sharia:The Threat to America)』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미국 내에서 ‘기독교 우월주의자’로 통한다”고 영국 가디언이 전했다.

다른 대외정책 조언자는 케이스 켈로그 전 미군 중장이다. 2003년 이라크 침공 때 야전지휘관이었다. 워싱턴포스트(WP) 등은 “부시가 사담 후세인 전복작전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이라크에 투입된 병력을 지휘한 사람이 켈로그”라고 소개했다. 게다가 그는 후세인 제거 이후 이라크의 치안체제 등을 짜기도 했다. 이른바 점령-체제 전복-새 체제 구축 등을 주도한 인물이다. WP는 “트럼프의 대외정책팀은 민간 전문가보다 펜타곤 출신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했다. 이런 비판을 의식했는지 트럼프는 18일 전 국무장관이자 외교학자인 헨리 키신저를 만났다. 외교정책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한 시도다.

| 경제정책은 참모 없이 홀로 뛰어
트럼프 “내가 곧 경제” 자신감

경제정책에서도 트럼프는 요즘 공격적으로 나서는데 방식은 다르다. 참모 없이 홀로 뛰는 모양새다. 그는 최근 부자 증세를 공약했다. 공화당 주류가 끔찍하게 싫어하는 공약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양극화가 낳은 대중의 분노를 겨냥해 공화당 주류가 혐오하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것일까.

정치 미디어인 더힐은 “힐러리가 경제 전문가 200명으로 구성된 경제팀을 갖고 있는 데 비해 트럼프가 공개한 선거 조직엔 경제팀이 분명치 않다”고 했다. 이어 “트럼프는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내가 곧 경제’라고 말한다”고 보도했다. 자기 손으로 돈을 벌어본 사람이 갖는 전형적인 자기 확신이다.

그럴 만하다. 트럼프는 재산만 100억 달러에 이른다. 부동산 개발그룹인 트럼프오거니제이션(지주회사)의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다.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를 맡아 트럼프타워와 엠파이어스테이트 등 빌딩을 보유하고 있다. 혼자 결정하다 보니 경제정책은 일관성이 없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트럼프는 오락가락하는 자신의 공약을 융통성이 뛰어난 정책이라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 비주류서 대통령 오른 잭슨처럼
트럼프 당선 땐 관직 물갈이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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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부동산 개발 외에도 뛰어난 흥행사이기도 하다. 그는 미인대회 회사인 미스유니버스오거니제이션을 소유하고 있다. 이곳을 통해 미스 유니버스와 미스 USA 선발대회를 연다. 로마의 황제가 검투사 경기로 대중의 눈을 끌었던 흔적이 트럼프의 미인대회에서도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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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돌려 트럼프 집안을 살펴보면 세 번의 결혼이 낳은 복잡함이 엿보인다. 올해 70세인 그가 46세인 아내 멜리나 트럼프와 살고 있다. 그리고 39세인 장남 트럼프 2세와 35세인 딸, 32세인 둘째 아들이 있다. 세 자녀는 모두 첫 번째 부인인 이바나 젤린코바 사이에서 태어났다. 딸인 이방카와 사위 제러드 쿠시너가 전면에 나서고 있다. 특히 트럼프는 뉴욕옵서버 발행인인 사위 쿠시너에게 정권인수위를 꾸리라고 지시했다. 쿠시너는 유대계 부동산 개발업자의 아들로 트럼프와는 달리 젠틀맨으로 소문나 있다.

트럼프 캠프는 아직 확실한 체계를 갖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참모는 다국적군 같은 모습을 보이지만 점점 질서정연해지고 있다. 이들이 어떤 절묘한 전략으로 트럼프의 백악관행을 이끌 수 있을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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